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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풀어 쓴 문준경 (38)시련의 시작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9.11.14 17:08
  • 호수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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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문준경 4대손)제일교회 담임

한국전쟁의 여파는 남도의 섬지역에도 밀어닥쳤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좌익 세력이 자리하고 있던 임자도는 전쟁이 시작되자 좌익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좌익 세력은 섬을 이탈하기 전에 지역의 우익들과 지주 등을 색출하고 처단하는 일을 속행하였다. 문준경의 남편 정근택은 둘째 부인 소복진과 함께 일곱 자녀를 두고 있었다. 족보에는 여전히 문준경이 본부인이었고 자녀들도 모두 호적상 문준경의 자녀들이었다. 하지만 문준경은 자녀들을 위해 부인의 자리를 온전히 내어줌으로 생모와 함께 생활하게 하였다. 동시대의 다른 여성들과는 구별되는 헌신이고 희생이었다. 이런 큰어머니(문준경)의 마음을 아는 것이었을까! 자녀들은 모두 잘 자라주었다. 해군사관학교 1학년 생도였던 첫째 아들 태휴가 휴교령이 내려지자 부모님이 있는 임자도로 들어왔다. 좌익세력은 해군사관생도를 곧바로 체포하고 살해 해 버렸다. 이 일로 정근택과 생모 소복진은 이미 얼이 빠져버린 상태가 되었고 자신들도 체포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피신하지 못했다. 그들은 면사무소 창고에 이미 붙잡힌 우익세력들과 함께 감금된 후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이 소식이 증도에 있는 문준경에게 전해졌다. 면사무소 창고에 감금되어 있을 남편과 동서(둘째 부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문준경은 평소에 하던 대로 바느질감을 떠서 따뜻한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임자도를 향하였다. 두 사람은 고문과 학대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문준경도 방문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영혼을 아끼는 마음으로 주저 없이 다가갔다. 또한 정근택이 문준경을 첫날밤부터 소박시킨 사이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녀는 두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방문했고 이 일은 큰 시련의 시작점이 되었다. 문준경은 이때 외부에서 들어온 좌익 지도부의 눈에 띄게 되었다. ‘저 부인은 누구요?’ ‘예, 정근택의 본부인입니다. 일찍 남편과 나뉘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습니다. 불쌍한 분입니다.’ 아마도 문준경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었던지 그녀를 도우려는 듯 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밀고 했다. ‘저 여인은 예수쟁이 전도부인이에요. 교회를 세우고 지금도 예수를 전하고 있어요. 씨암탉 같은 년이에요.’ 이 말을 들자, ‘음, 지독한 반동이군. 저런 년은 처단해야해.’라며 지도부가 모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준경은 증도로 돌아갔지만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좌익세력은 퇴각하기 전에 문준경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문준경을 살해하기 위해 임자도에서 좌익 지도부가 직접 증도로 들어왔다. 임자도에서는 우익세력과 지주계급 뿐 아니라 진리교회 성도들도 48명이나 희생되었다. 하지만 증도는 10명의 지역민만 희생되었고 성도들의 희생이 없었다. 문준경이 처음부터 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준경은 목포 정치보위부로 호송되었으나 이미 국군이 상륙한 상태였기에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증도로 돌아오지 않으면 성도들을 다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이때 문준경은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 망설임 없이 증도로 향하였고 처음 표적이었던 문준경이 희생됨으로 성도들은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만약 문준경이 임자도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길을 피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또한 문준경이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것이었고 위대한 순교유산을 위한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목포에서 몸을 숨겼더라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도들을 구하기 위해 문준경은 주저함 없이 달려갔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위대한 순교의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기시려는 주님의 뜻이었을까? 그녀의 순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는 섬김의 씨앗이었으며 또한 성도들과 교회를 구하기 위해 대신 짊어진 의로운 십자가였다. 그녀의 의로운 순교의 순간을 생각하며 다만 머리를 숙일 뿐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저 오묘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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