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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 사모의 글로 그림 읽기 <5>초가지붕 아래의 아기예수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3.12.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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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중 ‘동방박사들’

위 영 사모
(행신중앙교회)

성탄의 계절입니다.  별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별빛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오는지 아시는지요.  그 아득한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주님의 시간을 이해하게 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나타내는 환한 별은 동방박사에게만 비쳤을까요? 틀림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별빛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을 정하고 예물을 준비해서 집을 떠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혹 나섰다 하더라도 깊은 밤 오직 별빛만 의지하여 먼 길을 걸어야하는 동안 뒤돌아 선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그래선지  구전해오는 또 다른  동방박사 이야기도 있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가슴이 떨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맑고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특별한 일이 생기려 하는구나. 나도 그분을 만나고 싶어. 다른 세 동방박사들과 함께 그도 별을 따라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가산을 처분해서 금 세 덩이를 만들어 가슴에 넣고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갑니다.  사막을 지나는데 아픈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갈등이 다가옵니다. 지금 내쳐 가야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출 수가 있겠는데....그래야 그들과 함께 별을 따라 갈 텐데...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을 지금 내버려 두고 가면 저 사람은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결국 그 사람을 업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사람 사는 곳으로 가서 금 한 덩이를 내려놓고 치료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걷기 시작합니다. 만나야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치 않고 별을 따라 걸어갑니다. 같이 걸으며 서로 힘이 되어줄 친구가 없으니 외롭고 적막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걷습니다. 가뭄을 만나 먹을 것이 없어 굻어죽는 가족을 만납니다. 다시 금을 팔아 먼 동네에서 쌀을 사와 도와줍니다. 시간은 무심하게 자꾸 흘러갑니다. 마지막 병든 어린 소녀까지 도와주고 나니 품고 있던 예물인 금덩이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분을 뵙기 위한 믿음하나로 걷고 또 걷습니다.  설상가상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아, 주님, 평생 주님을 뵙고 싶어서 주님 뵈오려고 내 인생을 다아 드렸는데... 나무 아래 .쓰러진 그를 어느 사람이 부둥켜안습니다. 그가 사막에서 도와준 사람입니다. 이미 늙고 노쇠한 네 번째 동방박사에게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얘, 네가 사막에서 만난 사람이 나고 굶어 죽으려 하던 가족이 나란다. 어린소녀도  나였지. 네 친구들은 어린 나를 보았지만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나는 부활의 나란다. 네 번째 동방박사는 주님을 만나는 또  다른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도 훌륭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동방박사는 아름답습니다.   
운보 김기창의 그림입니다. 1989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로 꼽혔던 작가입니다. 조선시대 마지막 궁중화가였던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운보는 지극히 전통적인 한국화를 그린 작가입니다. 수많은 그림이 있지만 가장 멋진 작품은 바로 30점 연작으로 그린 성화 ‘예수의 생애입니다. 성화속의 예수님과 그 배경은 전부 조선의 것으로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이작품은 우리 회화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나지막한 초가지붕.. 동방박사들은 엣 중신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께 바치는 선물도 고려청자 속에 담은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색이기도 한 흰옷은 죄 사함을 나타내는 빛입니다. 무릎 끓은 사람들. 머리에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네들의 태도는 주를 만난 경외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대문에 까지 사람이 가득 늘어서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운보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믿음을 가진 신자였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선택받은 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 살이란 어린 내가 어찌 열병을 앓아 귀가 먹었겠는가.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기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이란 것을 절감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은 작가, 그가 적막한 고요 속에서 그려낸 예수님의 생애를 보며 또 다른 동방박사의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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