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한국교회의 상황은 “목사의 크기는 교회의 크기에 좌우 한다”는 말이 통용되는 가슴 아픈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 말에 저항하고 싶으나, 그리 할 수 없는 것이 아픈 현실이다.
또한 한국사회 전반에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제기되고, 더 이상 교회가 예수의 생명, 평화, 정의의 길을 따르는 ‘참 제자의 모임’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회의 성장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현실도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게 되었다. 이 대안적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교회의 노력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이 대안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것이 현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의식 가운데, 생명평화마당은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라는 화두를 내걸고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작은 교회들의 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박람회를 기획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대형 교회를 비판하는 이념적 투쟁의 형태는 지양하며, 오히려 그 동안의 고투로 지쳐있는 제자의 삶을 추구하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들이 함께 연대하여,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그 동안 감추어졌던 대안적 작은 교회 운동을 알리고, 바로 여기에 한국교회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참가자들은 평가했다.
최근 WCC 관계자마저 차기 대회를 위해 한국의 초대형 교회의 면전을 기웃 거렸다 하니, 그 위세를 충분히 가늠할 만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목회를 꿈꾸는 이들이 저마다 대형교회 일구기를 원하고 있다. 신학대학조차 이렇듯 성장을 위한 목회기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서서히 변질 되는 중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경험하고 있듯이, 몇몇 초대형 교회들의 도덕적 타락과 지향성의 왜곡으로 인해 전체 기독교가 한국사회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하나님 신앙보다 돈에 대한 신뢰가 교회의 근간을 이루면서, 저마다 최고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 교회가 아닌 바벨탑을 쌓아 왔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특히 세습으로 야기된 종교권력에 대한 비난이 극에 이르고 있다. 작으나 건강한 교회들조차 이들로 인해 선교자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주위를 살펴보면 교회를 등졌거나 혹은 원치 않게 유배당한 교우들의 숫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자본의 힘에 굴복한 한국 교회는 교회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양산했으나 예수의 제자들을 키울 수 없었다. 제자의 길을 가르치나 누구도 제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찍이 제자가 부재한 교회를 향해 본회퍼 목사는 기독교를 이념과 신화로 만든 것이라 일갈한 바 있었다. 이념과 신화로 전락한 기독교로는 세상을 섬길 수도 구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현실을 아파하되 실망치 않고 제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건강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생겨났고, 그런 교회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다. 이미 권력이 된 기성교회, 정작 생명을 주지 못하면서 구원기관, 제도로 전락한 안정된 교회를 지향하기보다, 예수의 삶을 쫓아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현장의 소리를 청취하는 예수 살이 공동체를 소망한 것이다. 이는 제도와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만족치 않고 교우들 간 인격적 만남을 중시하며, 교리가 아닌 삶을 나누고 세상 안에 있되 세상 밖을 사는 대안적 신앙 양식을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대교회 목회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 직을 감당하려는 교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대다수는 기성교회에 묻혀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 교회로부터 곱지 않게 평가되었다. 처음부터 인습화된 교회 관을 따르지 않았기에 교우들 역시 선뜻 마음을 주기 어려웠고, 오늘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처럼 작은 교회, 대안적 가치를 지향하는 소수의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들이 금번 박람회를 개최한 것은 한국교회가 여전히 희망임을 제시한 행사였다.
한국 사회가 초대형교회들의 존재양식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예수정신에 입각한 작은 교회들이 모여 기독교의 존재이유를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방식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들은 특히 작다는 것은 숫자적 의미보다 대안적 삶의 물음과 더욱 직결된 사안이자 주제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 한국교회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가 되었음을 적시한다. 목사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자존감을 교회의 크기에서 찾기보다 예수정신의 유무, 즉 사회 및 자연에 대한 우환의식에서 보려는 시도가 참신하다. 물론 이들 교회들도 아직은 부족하고 더욱 달라져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므로 공통된 고민을 갖고 자신들 공간에서 새로움을 창조했던 교회들로부터 상호 배움과 자극을 얻기 위한 이번 박람회는 그 자체로 매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남달리 특색 있는 카리스마 공동체를 일구어 왔을 것이며, 그들 삶의 흔적들이 유배당한 기독교인들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금번 박람회가 비록 미약한 시작이지만 이런 시도가 작은 날개 짓이 되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하다.
(박람회 취지문의 내용을 다수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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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환 목사의 목회에세이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