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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우상숭배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양진우 기자의 이슈추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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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맘몬·바알 숭배와 부정부패·비리는‘심판’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물질 신 맘몬과 풍요의 신 바알이 쌓아 올린 금융 바벨탑을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했는데, 떡으로만 살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떡은 돈이다. 돈보다 귀한 생명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돈이라면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던 우리들 아니었는가? 하나님과 재물(Money)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기독교에도 물신주의가 판친다.

 한기총 선거가 끝났다. 선거를 벌인 두 사람보다 한기총 선거관리위원장 이용규 목사로 인하여 성결교단이 빛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금권선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007작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를 뽑는데,‘ 금권선거’라는 용어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 용어가 기독교에 등장한 것은 타락의 정도를 보여 준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로 재단 비리와 일부 교단 총회본부의 공제회 유용 사건과 언론 비리 문제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왜들 이럴까? 하나님은 우상숭배자와 탐욕의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을 어떻게 다스리셨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종교계의 죄악은 인간의 마음을 분열시키고, 사악하게 만들고 심판을 받게 한다. 2500~2900년 전에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당했고, 앗수르 역시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다. 열왕기하 22장에 보면, 남유다 요시야는 어려서 왕 위에 오르고 나서 제사장들의 조언을 많이 받아들여 종교적으로 부흥을 이루었다. 하박국은 많은 선정을 베풀었던 요시야 왕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는 여전히 바벨론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역대하 35장에 보면, 요시아 왕이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을 치러 갈그미스로 가는 애굽 왕 바로느고를 막으러 갔다가 어이없이 화살에 맞고 궁에 돌아와 죽은 사건을 본 하박국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의인이 죽어야 하며 남 유다 민족들은 왜 북이스라엘의 패망을 보고도 회개를 하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나님께 하였다.

 특히 역대하 36장에서 요시아 왕 사후에 애굽 왕 바로느고는 국민들이 세운 여호아하스 왕을 애굽으로 끌고 가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호야김은 3년 동안 바벨론을 섬기면서 갖은 악행을 행하고 애굽을 의지하기 위해 바벨론을 배반하다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쇠사슬에 매어 끌려갔는데, 이때 1만 명의 예루살렘 지도층 인물들이 바벨론에 잡혀 갔다. 그의 어린 아들 여호야긴이 8세에 즉위하였으나 그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슬픈 일을 당하였다.

 이와 같이 유다 왕들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강대국들에게 당하던 시대였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시는가? 더 이상 유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수 없는가?”라고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을 하면 이방의 악인을 들어 써서라도 채찍질을 하신다. 그러나 결국은 악인을 패망시킨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역사적 상황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시켜 니느웨에 심판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이 도시는 회개하였다가 다시 엄청난 타락 속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훔을 불러 심판을 그 도시에 전하도록 하셨다. 구약 성경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을 통해 유다를 격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 졌다. 나훔서를 쓸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니느웨가 수도)에 의해 멸망됨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 백성은물론 남 유다 백성들도 크게 낙담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남유다 요시아 왕 치하에서 나훔이 일어나 앗수르가 멸망될 것을 예언해 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고무하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유다도 회개하지 않으며 그렇게 강했던 앗수르도 멸망되듯이 유다도 멸망될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의인도 회개하지 않으면 악인에 의해 멸망당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도구로 삼으셨던 악인은 결국 망한다는 것이다. 나훔의 예언은 그 이후의 계시 역사와 연결된다. 특히 니느웨를 음녀로 묘사한 것이 계시록에서 반영된 것을 살펴볼 때 계약 백성으로서의 유다와 이방간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계 17:1, 2, 15; 18:23). 이렇게 볼 때 본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에 기초하여 앗수르의 압제에 시달리던 유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겠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죄는 심판에 이른다는 원리는 모든 시대에 통한다. 그러나 스바냐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기 백성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심판의 목적은 멸절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화시키려는 것이다 (사 4:4). 스바냐의 메시지가 향하는 목표는 바로 유다의 회복이다(3:17-20). 스바냐는 참혹하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을 넘어서 동트는 새 시대를 내다보고 있다. 즉 자만한 유다 인에게 임박한 심판을 선고함으로서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을 예시한다.

 하나님은 선민이 죄를 지을 때 악인을 도구 삼아 치시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자식에게 상처를 준 악인을 심판하시고야 만다. 한국 교회는 회개할 때이다. 그 근거는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성경에 나와 있다. 한때의 지교회 목회 상황에 얽매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총총걸음하지 말고,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발걸음을 보면서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기자 양진우
본지 기자
숭실大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숭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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