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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예언종교의 일반적인 특성 비교 연구 (2)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목도, 복된 안식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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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주의와 예언종교의 일반적인 특성 비교 연구 (2)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목도, 복된 안식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이면에는 문명화된 세계와 사회를 혐오하는 기운과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고대인도, 그레코로만세계, 중세 독일과 프랑스 등의 경우가 그것으로서 미래에 관한 낙관적 신앙, 고귀한 정신의 인격, 구체적인 가치관과 목표, 삶의 과업 등에 관한 의지가 붕괴된다. 그 대신에 문명세계로부터 무한선(infinite Good)을 찾아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한 기운에 포착된 경건한 사람은 이 세계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이 땅 위의 낯선 자가 되어 어두운 무덤, 지독한 육체의 감옥(오르픽 개념:soma-sema, body-prison:플라톤의 이원론적 개념으로 전유됨)의 차꼬와 속박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의 모든 기독교 사상의 전거가 된다. 즉, 기독교 역사상에 나타난 신비주의 문헌의 근거가 되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차꼬에 묶여 속박된 영혼은 하늘 높이 올라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그 영혼이 생겨난 근원인 무한자(the infinite)와 신성(the divine)에게로 돌아가려는 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존재를 통해 발견 되어진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이는 외부세계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세차게 격리하는 것 - 감각의 입구를 봉쇄함, 혹은 자신 속으로 자신을 퇴각시킴(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개념:영혼의 가장 깊은 심연에 자신을 몰입시킴 혹은 던져 넣음)을 의미한다.
외부세례로부터의 해방에서 더 나아가 자아 및 모든 이기적 욕망으로부터의 탈출이 그 목표에 더해진다. 자연스런 육체적 충동, 인간의지의 소란하고 끈질긴 성향을 억누르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모든 감정적 삶과 세상적인 객체(대상)들에 대한 관심과 평가로부터 해방됨이 그 목표이다. 전적으로 자연스런 영혼의 삶은 외부세계로부터 차단됨을 통해 영위되며, 그 길은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제거되고 침전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것들을 죽이고 안식하게 만들며 감각에 눈멀게 만드는 길을 요구한다.
플라톤은 상술한 그러한 부정적 과정을 고대 오르픽 종교의 개념을 따서 정화(purification)라고 규정했다. 신플라톤주의는 이를 단순화(simplification)라 명명했고, 기독교 신비주의는 이 개념을 그대로 수용했다. 에크하르트는 이를 ‘entwerden'(ceasing to be)이라는 의미로 개념화했다. 헨리 수소는 이를 ’ceasing to be a creature'라 했고, 인도문명 계통의 서구 신비주의는 이를 소멸 혹은 절멸(annihilation), ’the becoming nothing'으로 규정했다. 이는 깊은 평화, 복된 정적과 수동적인 무위(not doing), 무통무락적인 무관심을 의미한다.
완전한 비움과 발가벗음의 삶은 무한자와 영원한 신성의 절대자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하려는 예비단계의 작업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느끼고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 한 정신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모은 힘과 가능성과 잠재성이 집중된다. 이것이 지고의 가치이며, 이러한 내적 집중력은 가장 높은 영적 실재에게로 날아가게 만든다. 그 영적 실재가 무엇인가? 자기 포기적 고요함, 지고의 선에 대한 무제한적 포기, 가슴 깊이에서 느껴지는 평화, 하나님 안에서의 복된 안식,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목도 등이 그것이다. 모든 유형의 신비주의는 지고의 선을 향한 그러한 정화된 영혼의 상승적 투쟁을 인식하고 있다. 대다수의 신비주의는 이를 ‘사랑’이라는 개념을 통해 강화시켜왔다. 이것은 신에 대한 신비적 경험으로서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축복으로 개념화 되었다. 즉, ‘enjoyment of God' 개념이 바로 그것이며, 이 개념은 ’higher Good'과 동일한 개념이다. 반면에 철저히 비인격적 특성을 지닌 신비주의는 절대자를 향한 감정적 충동 위에 비감정적 고독감과 고요한 정적감과 영혼의 합일을 내세운다. 에크하르트의 이런 언급은 그러한 서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나는 모든 사랑에 앞서서 격리와 은둔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송인성
대전삼성성결교회 부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졸업 (B.A)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 졸업 (M.A 조직신학전공)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수료
숭실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서양중세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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