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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한 사랑제2차 대전 후 패전국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산을 하나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다. 하나는 연합군과 연결되어 있어서 시설이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고아원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3.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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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행동은 ‘위선’이요 ‘거짓’

제2차 대전 후 패전국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산을 하나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다. 하나는 연합군과 연결되어 있어서 시설이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고아원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시설과 음식 좋은 쪽에 어린이 사망률이 건너편 고아원보다 60퍼센트가 높았다. 학자들이 그 이유를 발견했다. 전쟁 중에 세 아이를 잃어 상심한 40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시설이 나쁜 쪽에 고아원을 찾아갔다. 이 어머니가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보살폈다. 이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이 환경이나 영양보다 더 큰 자양분이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고백을 전재로 한다. 사랑은 독자적일 수 있으나 고백은 너와 나의 만남이요 표현이요 인식이기 때문이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손질 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검은 수염의 청년이 다가섰다. 그리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나를 따르라고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리였지만 베드로는 금방 그 위엄과 사랑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사랑의 힘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모든 것을 녹이고 포용하고서 부딪치는 것마다 유혹으로 매료시키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강도 한 사람이 구원받고 낙원에 이르렀다. 그는 평소에 사랑 없는 냉랭한 유대 지도자들의 율법 강론을 수 없이 들었지만 그의 마음을 변화 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활화산에서 분출된 뜨거운 용암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그 뜨거운 사랑이 강철 같이 굳은 강도의 마음을 녹여버리고 말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 고백적 헌신을 유도했던 예수님은 베드로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사랑의 방망이에 두들겨 맞고 난 후의 베드로는 참된 사랑에 철이 들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한 것은 어느 것도 막을 수 없고 목숨까지 쾌히 제단에 올릴 수 있었던 사랑 때문이었다. 이 사랑과 싸워서 누가 이겨 본 자가 있겠는가.  신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었고 배와 그물과 갈릴리 바다가 삶의 전부였던 베드로였지만 그는 고상한 고백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8) 이 고백을 한 베드로가 위대하다면 이 위대한 고백을 하게 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위대하실까. 똑 같은 죄를 짓고도 사랑 없는 가롯 유다의 끝은 너무 비참했다. 앙상한 정치 조직에 기회만 엿보았던 그의 최후는 피밭이란 썰렁한 이름만 남겼다. 하지만 베드로의 통곡은 기독교의 아침을 재촉했고 오순절 교사로서 사랑의 화신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신학교를 중퇴한 스탈린은 기독교를 등에 업고 나누어 먹자는 주님의 말씀을 모방하다가 사랑이 결핍되어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다. 사랑 없는 행동은 위선이요 거짓이다. 고백 없는 사랑에 누가 유혹 받겠는가. 사랑 없는 말과 윤리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사랑 없는 대책은 현대인의 공해이다. 사랑 없는 수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본전 생각나서 한숨까지 푹 쉬겠는가.

자기 직업을 사랑하지 말고 일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다면 모두 감사요 축복이다. 아기엄마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눈을 마주치고 피부를 비벼대면서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여기에 무슨 흥정과 너와 내가 따로 있겠는가. 사랑의 언어는 매일처럼 24시간을 호흡하고도 대가는 항상 무상이다. 사랑은 모든 인간관계를 완성 시킨다. 사랑 없이 이웃 간에 친절할 수 가없다  개인, 국가, 국제관계에 있어서 예수의 사랑 없이 협조, 공의, 평화, 안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작은 돌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킴 같이 크리스천의 정신적 공헌은 개인과 사회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킨다. 강은 작은 발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예수의 종교는 나사렛 예수와 갈릴리 어부들로부터 시작 되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금요일에는 실패의 비극으로 마친 것 같았으나, 구원의 샘은 거기서부터 흐르기 시작했으며 사랑은 거기서 승리하여 오늘까지 계속되며 또 영원이 계속 될 것이다.

기도와 찬송으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해야 하겠지만, 성경 전체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구구절절 고백 하는 것 말고는 달리 살아갈 묘책이 없다. 고백한 사랑이 내 평생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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