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목사(전주 은빛교회)

20세기에 치러진 두 번의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영국의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은 『전쟁의 역사』라는 세기의 역작을 저술하였습니다. 기원전 7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리고 전쟁을 시작으로 무려 9000여 년의 인류 전쟁역사를 기술하였는데, 그 분량이 1,04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시작되어 지금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전쟁의 역사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필연적인 ‘존재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지적한 것처럼 “권력에의 의지”에 지탱하여 사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만 있어도 한 사람이 우위에서 차지하려는 권력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이 전쟁터는 아닙니다. 우리네 사는 세상도 눈에 보이는 무기를 들고 싸우지는 않지만 영락없는 전쟁터입니다. 강자들은 승리의 개가를 부르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인생의 싸움에서 밀려서 암묵적 지배를 당하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인생길의 따뜻한 동행이 아니라, 기어이 정복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자들입니다. 살아가기가 고단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까닭은, 이런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 대해 탄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방증이겠습니다. 이런 연유 때문에, 겨울이 벌써 작별을 고하고 봄의 전령인 매화꽃이 지천이어도, 돌아볼 여유를 망실한 체 삶의 혹독한 추위를 아직 떨쳐내지 못한 이들을 수시로 만나곤 합니다.

역사 속에서 유혈의 피해 없이 끝난 전쟁은 희귀합니다. 『전쟁의 역사』를 쓴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적실하게 지적한 것처럼 전쟁은 이긴 쪽이든지 진 쪽이든지 모두가 심각한 피해자라는 점에서, 전쟁은 부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쟁은 언제나 “피로 얼룩진 평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명백한 죄악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잘못이나 죄에 대한 징벌과 청산”을 명분으로 시작되지만, 쌍방의 누구도 전쟁 자체가 죄라는 인식은 아예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입니다. 더욱이, 전쟁으로 잘못이나 죄가 청산되거나 정복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은 전쟁의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전쟁으로 나라를 정복하고, 민족을 정복하고, 제국을 정복한 사람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죄를 정복한 이는 아예 없습니다. 전쟁은 죽음을 몰고 오는 핏빛 그림자일 수는 있어도, 죄를 이기는 거룩한 어린 양의 피가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 단 한 분만이 유사 이래로 죄를 이기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를 이기신 그분이 세상의 유일한 구주가 되시는 이유도, 십자가의 승리가 기독교의 진리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에서 마침내 이겼노라고 노래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어떤 군주와 군대도 결코 이길 수 없었고, 이긴 적도 없었던 죄를, 저주를, 죽음을 우리 주 예수님이 이기셨습니다.

교회당 앞마당의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 사이로 이름 모를 들풀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봄의 생명이 겨울을 기어이 이겨낸 모습이 여간 대견스러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겨울은 결코 봄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죄와의 전쟁을 십자가로 이기셨음을 보여주는 선명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록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인생일망정 세상의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생명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기에 전쟁터 같은 세상 속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34~39).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히 봄의 생명을 누리십시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습니다.

김광일 목사(전주 온빛교회)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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