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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서종표 목사 - 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43)김용은 목사님께 목회를 배우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2.08 16:45
  • 호수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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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심방도 심방이었지만, 저녁에 설교준비를 해야 했고, 주일에는 설교나 모든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새벽기도 시간에는 졸기가 일상이었습니다. 피곤하다는 소리를 매일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김용은 목사님의 실체를 경험하는 현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을 추억하면서, 존경하는 목사님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아주 귀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떤 지인이 말하기를 목사님과 제가 닮은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설교 스타일도, 제스처도, 목소리도, 심지어는 걸음걸이도 얼굴까지 닮았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을 닮았다는 것은 기분이 매우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훈련받았던 것들이 목회 현장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김용은 목사님 때문입니다.

말도, 군산, 김용은 목사님 / 이덕성 목사(덕양교회)

하나님께서는 고군산군도의 교회를 섬기는 동역자들과 행복한 동행도 하게 하시고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 같은 두 분을 은총처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한 분은 최근에 뜻있는 분들의 노력 속에 교단의 백색 순교자로 추모 받으며 섬 선교의 별이 되신 추명순 전도사님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추 전도사님을 말도에 파송하셔서 고군산군도 열한 개 유인도 중 여덟 개의 성결교회가 있게 하신 교단의 큰 어른 김용은 목사님입니다. 그 어르신을 감히 뵈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추 전도사님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추 전도사님으로 인해 자연스레 김용은 목사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말도에서 첫 목회를 시작한 그 시절 김용은 목사님과의 만남은 제게 큰 위안이고 복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을 뵙게 되면서 군산까지 정이 들게 되었습니다. 섬 목회 7년간 배에서 내리면 항상 먼저 맞아주는 육지인 군산은 김용은 목사님을 뵙게 된 의미를 더하여 저의 제 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경하던 말도에서의 첫 해였습니다. 추명순전도사님을 모시고 목회하던 시절 군산에 모시고 나오면 추명순전도사님을 반기는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귀히 여겨주는 분도 없었습니다. 오직 김용은 목사님만은 달랐습니다. 추명순 전도사님과 저를 유일하게 반겨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식사하고 가라고 손을 이끌어주시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추 전도사님이 언제나 마음 깊이 고마워하신 분이셨습니다.

찾아뵈면 우람하신 풍채와 더불어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김 목사님은 좋은 사람을 만날 때 갖는 기쁨을 언제나 선사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단적으로도 큰 어른이셨지만 힘들 때 누구라도 안기고 싶을 큰 산 같은 분이셨고 깊은 샘과 같으셨습니다.

제가 처음 뵌 순간부터 변함없이 수십 년의 교분이 있던 사이처럼 너무도 살갑게 대해주셨습니다. 언제나 뵈면 힘과 용기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듣던 해맑은 음성과 호방한 웃음이 지금도 마음에 생생하기만 합니다. 한번은 후배 목회자들을 염려해주셔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많았어도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목회했는데 이제 갈수록 목회자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어. 예전과 너무 달라지고 있어. 앞으로가 참 걱정이야! 당신들이 걱정스러워!” 하시면서 바라보시던 우수의 눈빛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느 날은 찾아뵈었더니 금융기관 지점장이신 모 권사님을 호출하셔서 저를 위해 밥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다음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 목사 섬 사역의 소감 한번 말해 봐!”, “예. 섬 목회는 그냥 섬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고 시간적으로 쫓기지 않아서 기도가 바탕이 되는 사역입니다. 도시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은 목회 활동으로 힘든데 심신이 지칠 때 기도의 사역지인 섬에서 일하고 다시 충전되면 도시로 돌아가 사역하고... 목회자들이 섬사역과 도시 사역을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김 목사님은 “매우 좋은 생각이야! 근데 아주 네가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 크게 웃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격의 없이 대해주시고 아껴주시던 목사님은 후배 목사로가 아니라 자식처럼 생각해주셨다는 것을 많은 세월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말도에도 제한적이나마 전등불이 켜지고 전화도 개설되었습니다. 드디어 섬에도 문화의 혜택이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집 앞에 있을 때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뜻밖에도 김 목사님이셨습니다. 변함없으신 친근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 군산에 한번 나와!”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나하고 사우나에 같이 가야겠어!” “예? 사우나요?” “그래 사우나에 가서 때도 밀고 신체검사나 한번 해야겠어! 언제까지 혼자 지낼거야? 군산으로 나와 내가 중매 서려고 해.” “누가 섬에까지 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래, 내가 소개하고 싶은 규수가 있는데 만나 보지 않겠어?” 하시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근데 어른이 소개하면 무조건 혼인해야 해! 알지? 우리 때도 다 그렇게 했어. 목회자는 그렇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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