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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4)고향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27 23:49
  •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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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사람의 본향이 에덴이라고 결정해 놓고 삽니다. 따듯하고 안락한 연상입니다. 거기서 살던 행복 잃은 걸 ‘실낙원’으로 표현하여 춥고, 두렵고, 불안한 삶으로 묘사하지요. 실상이 그렇기도 하여 경제적인 삶의 질이 많이 높아졌어도 육신 가지고 사는 한평생이 두루 평안하고 만족한 경우는 잘 없습니다. 두렵고 불안한 심사가 밑바닥을 치면 우울합니다. 그 감정이 깊어지면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됩니다. 잘 치료되지 않으면서 때로는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입니다.

삶의 불편함 중 외로움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한국인의 54%는 외롭다고 느낀답니다.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의 1/3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마음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2018년 영국 정부는 외로움을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인식하여 “외로움 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답니다. 우리로 말하면 ‘독거노인 돌봄 부’ 정도 될 것이지요. 모두 고향 잃은 사람들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연말에 닿아 외로움에 서성이는 분들의 여러 목소리를 듣습니다. 노약자들은 가족을 떠나 요양원이나 병원 등 수용시설에 격리되니 외롭습니다. 질병을 만나 입원 중인 분들의 고통은 질병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질병이 가져다주는 외로움으로 더 우울합니다. 성탄절을 지나고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익숙한 삶의 자리를 박탈당한 분들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겠습니다.

성결교회 목사로 늘 과도하게 목을 써야 하는 나는 세 번이나 성대(聲帶)를 수술했어요. 긴 회복 기간에 목을 쓸 수 없으니 성도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새 예배당을 지으면서는 내가 일하는 서재는 바닥 난방으로 했습니다. 건조한 겨울에는 가습기를 가동합니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로 아늑합니다.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서재를 건조한 바람으로 덥히면 성대가 또 망가질 거거든요. 갱년기를 넘어서느라 열불이 나는 아내가 이 방에 들면 ‘산모(産母) 방 같다’ 합니다. 반면 처음 내 방에 오시는 겨울 손님은 모두 아늑하다고 좋아합니다. “여기가 천국이네! 뭐 이렇게 해 놓고 들어앉아 있으니 아예 나오질 않는구먼?” 눈 흘겨 반깁니다. 바닥 난방과 적당한 습도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미상불 그렇기도 하여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질 높습니다. 심방이라도 나갔다가 돌아와 목도리 풀고 덧옷 벗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 꼭 고향에 온 안도감이 들지요. 그러고 보면 에덴은 적당한 습도와 온도로 안정감을 주는 땅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고향에서 맨 처음 그들의 귀에 들린 것은 창조주의 말씀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모든 씨와 열매를 식물로 주노라”(창 1:28-30) 하셨습니다. 그 고향을 평안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주신 것입니다. 반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낸 말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두려움의 고백입니다.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 뱀이 줘서 먹었습니다” 등 금기를 넘어선 사연에 대한 변명입니다. 태초에 고향에서 만들어 가진 그 말들이 결국 인간 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늘 자신을 변호, 변증하고, 설명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삶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 설명하고 변명해야 할 말들이 길어지고 조급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침묵의 공간을 참아내기 어렵습니다. 말을 만들어 내려다보니 마음 조작도 해야 합니다. 그런 말들로 가슴은 겨울 삭풍처럼 황폐합니다. 말을 뱉을수록 마음은 외로움으로 빠져듭니다.

“입을 열면 적이 생기고 귀를 열면 친구를 얻는다” 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류 역사에 등재된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9-10) 듣는 마음을 지혜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세랍니다. 들어주는 귀가 있어 훈훈한 데가 고향입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지요. 말하고 싶은 욕구가 태초의 음성 듣는 즐거움으로 전환되는 곳이 고향입니다. 두려움이나 변명은 말로 표현하지만, 아버지의 품은 그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누리는 곳이거든요. 거기가 교회이어야 합니다. 부디 말하는 곳으로만 말고 귀를 열어 듣는 곳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에덴 같은, 고향 같은 교회를 이루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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