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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거룩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15-21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27 22:46
  •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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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 목사(기성 조치원교회)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면 우리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한 후 80년 인생의 아픔에서 탈출하고,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도망자에서 도전자로, 범죄자에서 민족의 구원자로 변화되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당하던 여인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한 후, 몸에서 혈루의 근원이 말라버린 은혜를 체험합니다. 부정한 여인에서 거룩한 여인이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레위기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거룩한 것(holy), 정한 것(clean), 부정한 것(unclean)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은 정한 것이 되어야 하고, 정한 것은 거룩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룩할 수 있을까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거룩하라”(레 19:1-2)고 명하신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에게는 어떠한 부정함도 어울리지 않기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려면, 죄와 분리되고 구별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구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십니다. 

마르틴 루터는 거룩하기 위해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으며, 자신을 학대하며 모든 형태의 고행을 했습니다. 수도원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고통도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이를 통해 결코 거룩해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거룩해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 제자들을 위해 “그들에게 능력을 주옵소서, 지혜를 주옵소서, 권세를 주옵소서, 사랑을 주옵소서, 자비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16-17) 성도들이 거룩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거룩해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받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여기서 말하는 소금은 돌소금입니다. 짠맛을 내는 소금을 거르고 남은 돌입니다. 이것은 강도가 약해 그냥 부서지기에 건축 재료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짠맛을 잃었기에 요리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길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거룩’을 잃으면 세상의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저 사람 교회 다닌다는데, 어째 우리보다 못하네. 엉터리네”라는 비난을 받고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아주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삼손도, ‘거룩’을 잃어버렸을 때 두 눈이 뽑히고 적국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저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맛을 내는 소금이 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가 회개하며,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했기에 나라를 살리는 선지자가 되었고,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거룩’으로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발전하고 세상이 변화된다고 하더라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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