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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 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27 22:36
  • 호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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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붉은 장미와 하얀 안개꽃이 가득 담긴 꽃바구니를 무릎 위에 놓고 앉아 있다. 지하철 안 승객들은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매서운 겨울 날씨에 화사한 봄을 선물 받은 것처럼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할아버지와 꽃바구니를 번갈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결혼기념일 아내에게 줄 선물인가? 아니면 출산한 며느리에게?’ 생각만으로 미소가 물결처럼 번진다. 할아버지와 옆자리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모든 게 밝혀진다. 할아버지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꽃바구니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청년이 연인의 생일선물로 보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행복을 나르는 기분으로 일을 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한 해를 보내면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잔칫집에 가면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살랑살랑 음식을 나르며 “많이 드세요”하는 사람이 인기를 끌고 ‘수고한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그런데 부엌에서 기름때 묻은 그릇을 씻고 땀 흘리며 쉬지 않고 묵묵히 푸짐한 음식을 만들어 낸 이들은 감춰져 있다. 우리 머릿속에는 나서서 생색내는 사람만 남는다. 한 회사가 잘 되는 건 책임감 있는 성실한 직원 덕분이고, 우리가 상쾌한 맘으로 깨끗한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은 늦은 저녁, 이른 새벽에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있어서고, 사회가 멈추지 않는 시계처럼 잘 돌아가는 것은 자기 자리 지키며 성실하게 일하는 공직자,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누리고 있다면 자기가 맡은 소임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소리 없이 궂은일을 해내는 이들의 노고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김병기교수(전북대)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우리나라 정치인은 나라를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움보다는 목전에 있는 이익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자기 책무는 팽개치고 권리를 주장하며 자기 이익 추구만 일삼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도 없다. 눈물겹도록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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