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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의 이야기 교회사(1)모든 길은 로마로, 복음은 로마를 통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14 07:50
  •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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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D.Min., 기성 많은샘교회 담임, 미국 루터신대(LTSP) 졸업)

로마는 이른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시작되고 제국으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융화정책으로 지방자치가 허용됩니다. 그래서 수도인 로마의 출신만이 로마인이었다가 국경의 확장에 따라 이탈리아, 그리고 각 지역의 중요 도시와 유력인사들에게 로마인의 명예를 주게 됩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날 때부터 로마인이라고 한 것은(행 22:26-28) 자신이 가진 특혜만이 아니라 출신지역의 유력인사임을 항변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표현되듯이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최고위층에 근접했던 촉망받던 사람입니다(행 2:1-3).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들이 발달되어 왕래가 용이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 도로들이 그대로 사용되는 곳이 많습니다. 평화의 시대라 여행이 늘어갔으며 무역거래도 활발해집니다. 이 길이 결국 바울의 선교 여행의 루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당시의 교통수단을 살펴보면 500kg 이상을 실을 수 있는 화물 운송 수단은 없습니다. 일반 마차의 경우 하루 29km 정도 이상을 가지 못합니다. 개인의 경우도 58km 정도 이상은 무리입니다. 속달 우편이 하루 144km를 가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서는 놀라운 발전입니다. 해상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어서 시실리(Sicily)에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까지 6일이 소요됩니다. 사도행전 27장 37절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이 승선한 배는 승객 276명을 태웁니다.

그런데 개정표준번역(RSV)의 각주는 76명으로 언급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런 큰 배가 있느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큰 배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수의 승객들이 입석표를 구해 입선했습니다. 따라서 크기에 비해 많은 인원이 탄 선박이 운항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 곳으로 여행하려면 찾아가는 곳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아는 사람을 통한 소개 편지를 가지고 이동하여 그곳 수신자에게 숙식을 제공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숙박업소를 이용합니다. 유대인들은 목적지의 회당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요? 하지만 이는 소수이고 대다수는 숙박업소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숙박업의 발달은 유흥업의 성장과 맞물렸기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도덕과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가급적 교인간의 대접으로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관습으로 받아드려집니다. 이에 따라 성경에 상대방에게 사람을 소개하는 문구와 숙박의 제공에 감사한다는 표현들이 나타납니다(딛 3:12-15, 행 15:22-16:23). 

숙박업의 문제는 로마의 남성우월주의가 빚은 도덕적 타락이 한 몫 합니다. 당시 어느 시인은 ‘이혼하기 위하여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하여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남자에게 해당되고 평범한 여성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이혼을 강요당한 여인들은 살기 위해 결국 숙박업소에서 몸을 팔게 됩니다. 아이들도 유사합니다. 도덕적 문란에 따라 배우자나 자녀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그 아이는 유기 되거나 죽임을 당합니다. 또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은 노예로 양육하거나 거래하는 암시장에 팔려갑니다. 이를 모두가 암묵하는 가운데 훗날 교회에서 성만찬을 할 때 사용된 “살과 피”라는 표현에 책임을 전가하게 됩니다. 실종된 아이를 교회가 살해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받아주는 기독교는 노예, 여성, 가난한 자와 아이들에게 환영받는 종교가 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기존 질서를 거부했다기보다는 단지 일부 기득층만을 위한 종교이기를 거부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복음의 도덕적 요구가 풍요로 타락한 세속, 로마의 사회상과 대치되었을 뿐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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