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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39)섬 교회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2.14 07:19
  • 호수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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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1. 그들의 인습과 어두운 시절

김용은 목사님은 ‘나는 섬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먼저 나온다’라고 어느 자리에선가 회고하셨습니다. 김용은 목사님을 생각하면 큰 산이 그려집니다. 고군산의 섬 교회들을 누구보다 많이 사랑하셨고, 섬 교역자들에게 늘 따뜻하게 대하셨던 그분의 사랑이 큰 언덕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1958년 10월 초순 계절풍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의 초엽, 목사님은 당시 전라북도 도지사인 박정근 씨와 도청 수산 지도선(船)과 헬기를 이용하여 구호 사업과 미신타파를 위해 고군산 지역의 섬을 순회하셨습니다. 생전의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기를 도지사를 앞세워 섬을 자주 찾았던 이유는 알렌 선교사가 고종의 주치의가 되어 고종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개신교 선교를 했던 것과 같은 이치에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신과 무속이 득세하고 있던 섬 지역에 사람들이 어려워하면서도 신뢰하는 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새끼발가락이 머리에서 멀다고 몸의 일 부분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섬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전라북도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도지사를 설득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에 김 인 도지사 재임 시절에는 당시 개선해야 할 장례법이었던 초분(草墳)정리를 위해 고군산의 섬들을 순회했으며 이정우 지사 재임 시절에는 각 섬에 급식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동시에 복음전파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당시 섬에는 미신적이고 비위생적인 풍습이 많았다고 합니다. 임신부가 산월(産月)이 되어 출산할 때가 되면 부정 탄다고 하여 동네 밖에 나가 해산을 해야만 해서 임산부는 백사장에 모래 구덩이를 파고 임시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아기를 해산했답니다. 아이를 출산하는 일엔 생명을 걸고 산통을 겪어야 하는데 무섭게도 동네 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서러운 시절이었답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다가 죽으면 그냥 백사장에 움막과 함께 묻는 일도 허다하게 많았답니다. 선유도의 진말과 전월리 사이에 해수욕장이 있는데 길을 내기 전 그 해수욕장을 따라 자연적으로 생긴 모래 둑 위로 만조 때 바닷물이 이쪽과 저쪽으로 서로 넘나들 때, 가끔 모래밭에서 사람 뼈가 나오기도 했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나이 많은 집사님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당에 담을 쌓아야 할 때도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한 다음에야 일을 시작하는 등 미신 때문에 참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답니다. 또 사람이 죽으면 땅에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초분(草墳)이라 하여 시체를 돌이나 나뭇가지로 덮어 놓았고 어린 아이들 시체는 그냥 나무에 매달아(風葬) 놓았었다고 합니다. 미신숭배와 초분 때문에 섬 안에서 개 한 마리도 마음 놓고 기를 수 없었답니다. 그 당시를 회고하시면서 목사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어둠의 세월이었기에 목사님의 마음이 더 아프셨답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환경개선과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섬에 교회를 세워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졌답니다. 육신적으로도 가난하고 인생이 힘든 사람들이 복음에서조차도 소외되어 죽어가는 것이 목사님의 마음에 깊은 아픔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이러한 섬에 복음이 들어와 당산제와 굿판 벌이는 일들이 사라지고 무당이 휴업을 하게 되었지요. 복음과 함께 섬 여인들의 지위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미신을 숭배하던 시절에 여인네는 자기네 소유의 배에도 감히 오르지 못했습니다. 출어 전, 아침에 여인네가 남정네의 앞길을 질러가면 재수가 없다고 그 날은 출어를 안 했다고 할 만큼 여성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그물 일도 하고 고기잡이도 합니다.

2. 김용은 목사와 고군산의 교회들

학교나 빈 소금 창고 혹은 가정집에 십자가를 달고 예배를 시작한 것이 고군산 지역 섬 교회들의 시작입니다. 목사님은 섬 안의 미신타파와 환경개선, 굶주린 도서주민을 먹이기 위한 구호 사업, 교회개척 등을 적극적으로 앞장서시기도 하시고 후원하시기도 하면서 섬 사랑을 돌아가시기 3년 전까지 지속하셨습니다. 지금은 중동 교회와 서종표 목사께서 목사님의 뜻을 이어 섬 지역 미자립 교회를 매월 정기적으로 경제적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고군산 교회들의 시작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한 자락씩 가지고 있습니다. 두리도교회는 믿음에 열정이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오신 선생님이 교사 사택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야미도교회는 야미도 초등학교에서 김용은 목사를 모시고 첫예배를 드린 것이 야미도 교회의 시작입니다. 선유도교회는 1958년 5월 8일 당시 진말 이장이던 이명철 씨의 사랑방에서 김용은 목사를 모시고 주민 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시작했고 그 후에 비어 있던 소금 창고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처음 교회 이름은 고군산성결교회였다가 1963년에 교회를 신축하고 선유도교회로 교회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고군산중앙교회는 60년 초에 설립되었다고만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고 목회자가 없어 폐쇄되었다가 1979년 1월 25일에 최인식 전도사에 의해 마을 회관을 빌려 백풍교회로 재건되었고, 1980년에 고군산중앙교회로 개명하였습니다. 장자도교회는 1959년 12월에 군산 개복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신화순 씨가 장자도로 시집와 살던 집에서 김용은 목사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관리도교회의 설립연도는 1959년인데 70년대 초에 교회가 폐쇄되었다가 1982년 이덕원 전도사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방축도교회도 설립연도가 60년대 초로 기록되어 있고 폐쇄되었다가 최인식 전도사와 십자군전도대의 김희찬 전도사에 의해 1981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말도교회는 1959년 10월 31일에 중동 교회와 김용은 목사의 지원을 받아 추명순 전도사에 의해 개척되었습니다. 연도교회는 60년 대 초로 설립연도가 기록되어 있고 김용은 목사께서 직접 교회 간판을 걸고 예배드리다가 감리교단으로 넘겨주어 지금 현재는 감리교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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