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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어럼(autom) 이야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8 15:28
  •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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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워싱턴 뉴욕을 지나 이주 넘게 머물던 시뉘네 시카고의 집은 전형적인 미국 집이다. 앞뒤 넓게 잔디밭이 펼쳐지고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있다. 이웃집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알맞은 거리를 두고 비슷비슷하게 자리하고 있다.

혹시 미국인들의 쿨함이 이 거리에서 오는가,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사는 우리네 민족성은 좁은 땅에 기인한 것인가, 요즈음 우리 아이들도 상대방의 개인사나 내밀한 부분을 터치 않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긴 하더라만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터득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는다를, 거기 보이지만 전혀 알 수 없는 미국의 이웃집을 보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창밖을 내다보면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잔디 위를 구르며 가을의 정한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하루하루 날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 것을 그 빛으로 여실히 보여준다. 가을은 어디나 아름답다. 나 있는 동안 시카고는 내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었는데 그곳 하늘도 쪽빛이다. 나는 왜 우리나라 하늘만 쪽빛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시카고의 하늘도 이리 푸르른 것을, 눈 뜨면 환기하기 위해 미세번지를 체크하던 아침 시간이 아득할 만큼 날씨는 맑고 청랑하다.

차 두 대를 주차하는 차고가 있고 일 층은 거실과 식당 그리고 시뉘 남편의 일터이자(그는 은퇴 후에도 같은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인 어럼(가을)이 거하는 방은 문만 열면 바로 정원이었다. 어럼은 시누이가 남편 은퇴선물로 데려온 반려견이다. 지니어스 타입이면서 굉장히 내적인 성향의 시뉘 남편에게는 최상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은퇴라는 선언은 아무리 이리저리 감싸도 어찌할 수 없는 늙음 선언의 한 부분일진대 그 서늘함을 어럼이 충분히 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왜 이름을 어럼으로 지었냐니까 데려올 때 그 이름이라 낯선 집으로 오면서 이름까지 달라지면 슬플 것 같아서 그냥 어럼으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처음 볼 때 정말 송아지였다. 개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살짝 무서웠다. 그런데 어럼도 나를 무서워했다. 꼬리를 다리 속으로 넣고 귀는 머리 뒤쪽으로 붙인 채 주인 다리에 붙어서 어찌할 줄 몰랐다. ‘얘 나도 네가 무서워’.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겠지. 놀라운 것은 간식을 줄 때였다. 그 커다란 혀로 내 손에 든 간식을 가져가는데 내 손바닥에 이빨은 커녕 혀도 거의 닿지 않았다. 몸이 크니 이빨과 혀도 엄청나게 크고 길었는데 혀의 섬세함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 작은 간식을 가져가는 배려 깊은 모습에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럼에게 건너갔다. 그리고 친해졌다. 나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내가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었다. 간식을 주면서 다운! 하면 몸을 눕힌 채 그 커다란 얼굴을 자신의 깔개 속으로 굽히며 애교를 부렸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그 커다란 몸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는 어럼. 사람끼리도 말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런데 어럼과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어럼은 그 혀를 사용할 때 나에게 말했다. 사랑받고 싶으면 노력하라는 것을 그 몸으로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어럼은 내가 그에게 관심을 표명하기 전까지 그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어럼은 기다릴 줄 알았다. 기다림은 사랑의 온전한 형태가 아니던가.

이런 미천한 동물(요즈음 이런 문장을 쓰면 무식한 사람이 되나)에게도 본능처럼 사랑이 존재하다니, 이는 결국 사랑이 생명 자체라는 경이로움을 웅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기실 지금 우리도 온전하신 분의 사랑, 그 기다림 때문에 생명을 영위하고 있듯이, 높으신 분의 온유함, 그분의 기다림 속에 부르심의 시간이 흐르고 사랑이 완성되어 가고 있듯이,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 깊은 은유의 시간이다. 그래서 시인도 ‘기도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홀로 있게 하소서’ 구슬프고 아름다운 시어로 기도했을 것이다.

깊은 밤 무슨 소리가 나는 듯 해서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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