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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리차드 포스터(19)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8 14:51
  • 호수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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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교수

 

“기도는 영혼을 던져 넣는 내적인 사랑의 욕실이다.” - 성 존 비엔니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제1부 안으로 향하는 기도

제3장 성찰의 기도(5)

내면을 향해 기도하는 것 (2) -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내면세계의 성찰을 통해서 당신은 하나님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은 자석과 같다. 하나님은 본래의 당신을 점점 더 자신에게로 잡아 이끌어 당기 신다”고 귀용 부인은 말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중심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당신의 영혼이 일단 내면을 향하기 시작하면 이 중심적 경향의 법칙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올바른 중심이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인간의 영혼은 사랑의 힘 외에는 그것을 잡아 이끄는 다른 힘을 필요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 – 내면을 향한 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를 돕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활동이 있는가? 그렇다. 일일이 열거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이제 몇 가지 더 흔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의식의 성찰로 들어갈 방법 중 전통적인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영적 일지를 쓰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으로부터 다크 함마르스 쾰드(Dag Hammars Kjold)의 표시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영적 여로를 기록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알았다. 버지니아 스템 오웬즈(Virginia Stem Owens)의 말처럼 “일지는 직기(織機)의 바디처럼 우리를 목재의 심재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일지 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의도적인 반성이다. 일지는 누가 무엇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왜 무엇 때문에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일기와 다르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발판이다. 일지의 특별한 가치는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개인적인 에벤에셀을 기록해 둘 수 있는 데에 있다. 그 기록을 통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역사를 볼 수 있고, 우리가 지금 씨름하고 있는 문제와 우리가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프랑크 라우바흐(Frank Laubach)의 많은 기록과 일기들은 의식의 성찰에 대한 훈련된 모험의 내용이다. 특히 그의 “촌각과의 게임(Game With Minutes)”을 통해서 나는 그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순간 들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지냈는지 알 수가 있었다. 1937년 정월 초하루 그는 이런 글을 남겨놓았다. “하나님, 저는 이 한 해 동안의 모든 순간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깨어있는 모든 순간순간 주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잤지만,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웃으며 눈을 뜹니다. 제 옆에서 밤새도록 기침하는 저 사람이 저의 밤을 방해 하지만 그것이 저를 주님과 멀어지게 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어휘 학습(Learning the Vocabulary of God)』”이란 책에서도 라우바흐는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배우는데 1년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한 실험 초기에 그는 말하기를 “주님, 주님의 어휘를 찾는 이 작업은 제게 새로운 환상의 모든 세계를 약속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하여 호주머니 속에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이 그것을 기록합니다”라고 하였다. 흥미롭게도 그해 경험으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애 최고의 역작인 라우바흐식 언어습득법을 고안해 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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