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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최선의 고통’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2 07:00
  • 호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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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목사(기성 사랑의동산교회)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고통은 피해야만 하는 장애물일까? 이 책은 우리에게 고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적절한 고통이 오히려 더 나은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클라이밍, 캠핑, 마라톤, 사이클링 등 고통스러운 지점을 선사하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고통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선천성 ‘무통각 증후군’, 통증은 있으나 불쾌함은 없는 ‘통각마비 증후군’은 고통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방향으로 우리의 시야를 열어준다.

우리는 통증을 느낄 때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이상하게 통증의 반대인 격렬한 쾌감, 놀라운 기쁨, 엄청난 흥분을 느낄 때도 비명을 지른다. 이런 역설적 반응은 사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우스운 장면을 보고 웃지만, 불안하거나 창피할 때도 웃는다.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 때 보상작용으로 감정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표정과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쾌락의 유연성 원칙이다. 우리의 마음은 균형과 항상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반응은 부정적인 감정과 만나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

뒤이은 쾌락을 강화하기 위해 고통의 경험을 선택하는 것은 강력한 수법이다. 물론 쾌락과 고통의 균형이 필요하다. 고통을 통해 쾌락을 얻는 양성 피학증은 그래서 아래와 같은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① 고통은 비교적 짧아야 하며, ② 즐거움은 그 이상 되어야 한다. ③ 또한 고통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심각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통에 뒤이은 쾌락’이 ‘쾌락에 뒤이은 고통’보다 낫게 기억된다. 고통의 양이 쾌락의 양과 같다고 해도 고통이 먼저 오면 기억의 왜곡 때문에 고통이 감소하고 쾌락이 증가한다. ‘고통에 뒤이은 쾌락’의 긍정적인 속성 중 하나는 고통을 느끼는 도중에도, 쾌락이라는 미래의 보상에 대한 생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외에도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이 있다. 바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고통의 능력이다. 고통은 한 곳에 몰입하게 만든다. 심지어 고통은 의식적 자아를 일시적으로 지울 수 있다고도 한다. 어떻게 하면 몰입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까? 몰입상태는 골디락스 경험이다. 가격이 아주 비싼 상품과 싼 상품, 중간 가격의 상품을 함께 진열해 중간 가격의 상품을 선택하게 유도하는 판촉기법으로 거기에는 절호점(Sweet Spot)이 있다. 즉, 너무 쉬운 것(지루해짐)과 너무 어려운 것(스트레스와 불안을 발생시킴) 사이에서 딱 적절한 정도의 도전이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 중에 “불행과 고난을 통해 현실을 규정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일정한 정도의 불행과 고난이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의미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목표에 대한 추구를 포함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난관, 불안, 갈등 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고난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고난은 언제나 의미 있는 삶에 동반한다.

고난의 효용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을 제시한 사람은 C.S. 루이스다. 그는 “고통은 주의를 기울일 것을 고집한다. 신은 쾌락 속에서 속삭이고, 양심 속에서 말하며, 고통 속에서 외친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그의 확성기다”라고 말했다. 고난이 좋은 것이라는 종교적 사상은 우리가 기꺼이 듣고 싶어 하는 메세지다. 또한 종교는 고난에 시달리는 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고통은 가치에 대한 적절한 인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강간당하거나 암으로 아이를 잃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은 어떨까? 이런 비선택적 사건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까? 나쁜 경험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또한 분노와 공포를 안기고, 더 방어적이고 덜 친절하게 만든다. 정신적 외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다. 이런 사건은 부정적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고난에서 태어난 이타주의’라는 가능성에 매료된다. 오히려 그들이 당한 고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동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우리에게 쾌락과 행복 그리고 충만감을 더하게 만드는 것이 고난이라고 주장한다. 적절한 고난이 쾌락을 창출하고 강화하며, 또한 의미 있는 활동과 삶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고난 회피’를 선택한다. 고통스러우면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적절한 인내와 고난의 순간을 이겨냈을 때 누리는 성취감과 기쁨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누릴 최후의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감내하셨다. 우리의 기쁨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고난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되길 소망한다. 폴 블룸, 『최선의 고통』, 김태훈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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