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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1)소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2 09:06
  • 호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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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본디 음악이나 미술은 젬병으로 타고났습니다. 매일 찬송을 부르는 덕에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음치, 박자치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기능은 유치원 학생 수준이구요. 그러다가 르네상스 전후에 그려진 고전적인 화가들의 비현실적으로 장중한 화풍과 근, 현대 그림들의 사람 중심적인 질박함의 차이를 발견하고는 한참 그림 보는 일에 심취 했더랬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뜻 모를 눈물을 바쳤지요. 미욱한 미술 감각으로 그림에도 메시지가 있다는 자각에 닿았습니다. 한국화도 소치, 미산, 남농 3대가 이룬 남화 등의 근대 수묵화뿐 아니라 이당, 김은호의 채색화 등을 보는 눈을 떴습니다. 왜색이 짙은 건 유감입니다. 그 후에 일제와 전쟁 통에 가난을 기막힌 그림으로 일궈낸 이중섭이나 가족들의 질박한 표정을 담아낸 박수근, 화투판 그림같이 알록달록을 그려낸 김왈종 등의 그림 마다에 든 감성을 새롭게 체득합니다. 황토를 색으로 뽑아 토종 한국인의 살색을 그려낸 김호석의 그림은 은근한 자부심입니다.

첼로 소리가 좋았습니다. 교향곡을 좀 크게 듣는 일은 남 눈치 볼 일 없는 새벽에 홀로 누리는 호사입니다. 교회에 더부살이하는 덕에 쓰다 남은 스피커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중저음이 묵직한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역시 첼로의 중후한 소리가 돋보입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음악의 차이를 청각으로 배웁니다. 차이콥스키도 들어요. 체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음악을 만들던 드보르자크의 고향 그리는 아련한 교향곡은 심금을 울립니다.

그런 소리들이 좋아 오케스트라에 나오는 악기 이름들과 소리의 특징을 독학했습니다. 전자 음 이전에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대표적으로 오르간, 피아노, 그보다 오래된 쳄발로 등 건반악기가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전자 오르간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드니 구별이 무색하지만 그래도 파이프의 공명으로 장중한 소리를 내는 전통 오르간 소리를 대신하기는 쉽지 않아요. 다음은 쉽게 표현해서 현악기와 관악기, 그리고 타악기도 구별하면 됩니다. 물론 관악기는 목관, 금관으로 구별하지요.

타악기는 아무래도 북 종류가 출발일 테지요. 짐승 잡아 벗긴 가죽으로 만드는 소리니 그 타격음은 생명의 박동, 심장으로 반응합니다. 때로는 진땀이 나지요. 관악기는 직선으로 된 피콜로,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흔치 않지만 콘트라 바순 등이 있습니다. 짧고 곧은 관에서는 청명한 소리들이 만들어지는 목관 악기들입니다. 물론 바순을 큼직한 덩치니 둔탁한 소리로 구별되고요. 금관악기는 꼬불꼬불한 관을 통해서 소리를 증폭시키거나 가공합니다.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인데 직선 악기 보다는 더 감미로운 소리를 내놓습니다. 긴 관을 통과하는 호흡이 인생 여정에 비유됩니다. 구곡간장을 거쳐 내놓는 소리여서 구성지고, 숨기거나 드러내기를 반복합니다. 소리의 구절구절에 사연이 담겼습니다. 군대 기상나팔의 구성진 소리는 금관악기의 대표적 감성일 테지요.

현악기는 공명통에 줄을 매서 소리를 증폭하는 방식이 같습니다. 찰현(擦絃)악기는 줄을 활로 비벼서 소리를 내고 발현(撥絃)악기는 기타, 거문고처럼 줄을 뜯어서 소리를 만듭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기는 콘트라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등 찰현악기들입니다. 더 가치 있는 소리를 내는 수단은 공명통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현악기들은 수백 년을 견디며 여전히 격조 높은 소리를 통해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1년 일본의 경매에서 이 바이올린 한 대가 장장 190억에 낙찰된 전력이 있습니다.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북크로아티아의 단풍나무를 인고의 과정을 거쳐 가공하여 만든 울림통이어서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토해 냅니다. 그야말로 명품이지요. 속을 비우고 비워서 마침내 다다른 공명, 빈 소리여서 더 성숙한 사람 닮은 소리를 내는 걸 겁니다. 비우지 못하고 채운 건 둔탁할걸요?

청춘 남녀가 데이트로 만나서 ‘밥 먹었어?’ 라고 묻는 말과 팔순 노모가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게 ‘밥은 먹구 댕기능겨?’ 묻는 말은 같은 질문이라도 웅숭깊은 내막은 사뭇 다르지요.

사람을 악기에 견줍시다. 자기 소리를 들어봅시다. 구불구불 살아온 인생이 더 잘 다듬어진 소리로 토출되기를 소망합니다. 단단한 내공으로 지은 공명통이 있어 어떤 소리도 아름답게 울려 나기를 소망합니다. 그게 명품으로 살아내신 그리스도의 음성이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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