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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리차드 포스터(18)기도로의 초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1 18:11
  • 호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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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교수

 

“기도는 영혼을 던져 넣는 내적인 사랑의 욕실이다. - 성 존 비엔니”


리차드 포스터(Azusa Pacific University 신학과)교수는 미국 LA에서 ‘Renovare’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영적 훈련과 성장’, ‘돈과 X 권력’이란 책의 저자로도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제1부 안으로 향하는 기도

제3장 성찰의 기도(4)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은혜(2) - 우리의 재능만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고 깨어진 불완전한 모습까지도 드려야 한다. 우리의 이중성, 욕망, 허무주의, 게으름, 이 모든 것들도 희생의 제단 위에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악의 깊이를 부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역설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죄악이 우리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한 진리의 일부로써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실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면, 우리는 신비한 방법으로 영양을 공급받게 된다. 우리의 그늘진 부분에 관한 진실까지도 우리를 자유 하게 한다(요 8:32).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억누르거나 억제하거나 미화시킬 필요가 없다. 완전하고 꾸밈없는 자기 지식의 악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다. 그것은 또한 악한 가운데서 우리를 지탱해 주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자아 인식은 믿음을 통해 우리를 자기 긍정과 자기 사랑으로 인도하며 이것들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성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은 옳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하는 양식이다.” 그녀의 말은 참으로 현명한 권고이다. 이 자아 인식의 길은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내면을 향해 기도하는 것 - 앞서 말한 것처럼 성찰의 기도는 두 가지 면이 있다. 그것은 매우 정확한 분석이지만 실제로 행하려고 하면 분석이 잘못된 것 같이 보인다. 사실 그 경험은 끊임없이 중복되고 마주치며 서로 섞였다가 다시 분리되는 두 개의 동심원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나타내는 것보다 더 생생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의식의 성찰과 양심의 성찰은 바다의 파도와 다소 유사하다. 서로가 구별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절대로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이 문제를 이해하고 나면 이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 문제는 성찰의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찰의 기도는 내면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바깥이나 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오직 안으로 향하는 것이다. 안토니 블룸(Anthony Bloom)은 “당신의 기도는 내면을 향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 계신 하나님을 향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찰의 기도는 어떤 다른 형태의 기도보다 더 깊이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드릴로 땅속 깊은 곳을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훨씬 내성 적이 되어 내면을 향한다거나 무언가 우리 안의 어떤 특별한 내적인 힘이나 우리를 구원할 마음속의 구세주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내면을 향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헛된 노력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내면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서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와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성 존 크리소스톰(St, John Chrysostom)은 말했다. “당신 마음의 문을 찾아라. 그러면 그 문이 하나님 나라의 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귀용 부인은 이런 특별한 종류의 내면 성찰을 중심적 경향의 법칙이라고 했다. 또한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내면세계의 성찰을 통해서 당신은 하나님이 자석처럼 끄는 힘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은 자석과 같다. 하나님은 본래의 하나님을 점점 더 자신에게로 잡아끌어 당기 신다”고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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