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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정원영 목사의 Book-Life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26 07:20
  • 호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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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임진각순례자의교회 담임)

 

무속-원하는 것을 위해  신을 달래고 빌어서라도 얻으려는 것입니다.

‘심윤경’님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한겨래출판사)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출산하는 엄마를 염려해 시내의 큰 병원에 분만 예약을 해놓았지만 엄마는 그곳까지 갈 겨를이 없어서 사과 상자처럼 답답한 동네 조산소에서 몸을 풀고 말았다. 나는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귀를 쫑긋이 세웠지만 엄마가 들어간 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정성스레 아들을 기원하던 할머니는 난데없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새끼야, 마호병은 뭐 하러 들고 왔어?”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배부른 여인네가 해산할 때면 산파 할머니가 빠지지 않고 찾는 것이 더운물 아니던가. 도저히 시내 병원까지 갈 수 없으니 조산원으로 가야 하겠다고 소리 지르는 옆집 아줌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부엌 싱크대에 기어올라 찬장에 앉아 있던 보온병을 꺼내 더운 보리물 부터 챙겼던 것이다. “지랄, 이까짓 보리차는 뭐라고 안고 있니?” “아이구, 칠성님. 이 늙은이가 둘째 손자 하나만 안아보게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토란 같은 불알 달린 손자 놈만 낳아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는 저 정성스러운 기도문 속에 또 이 새끼야 하는 욕설이 섞이면 얼마나 남 보기에 부끄러울까 하는 생각에 주위를 살폈다.

그 옛날, 우리나라 70년대 풍광인 듯해서 정겹기도 합니다. 모두가 가난했고 평범했던 그 보통 사람들인 우리 모두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가는 글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들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정서와 신심이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 심성에는 무속적 신앙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소원한 것을 신에게 빌어서라도 그리고 달래서라도 얻고자 합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간절함이 오롯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바를 얻기위한 방법으로서의 비는 행위 외에 신과의 어떤 교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린 손자에게 말하는 할머니의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난데없이 손자의 뒤통수를 후려친 할머니는 “이 새끼야,,, 지랄,,, 등 폭력에 가까운 언어는 할머니답지도 그리고 엄마를 걱정하는 어린 손자의 마음을 살펴주는 면모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원을 위해 “아이구, 칠성님. 이 늙은이가 둘째 손자 하나만 안아보게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자에게 쏟아 낸 언어나 태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을 달래는 것입니다. 윤리나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이 어떤 삶을 살든 상관이 없습니다. 무당들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달래는 것입니다. 무당들도 자신들의 삶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도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빌고 달래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 용서해 주시라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승진하게 해달라는 것 등을 간절히 구하고 보험이라도 들 듯 헌금을 내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다 보니 그리스도인의 냄새가 나게 됩니다. 사명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와 복을 받으면 다음 사명을 위해, 더 열심히 부지런히 복음의 삶을 살며 나누며 돕고 합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무속 신앙적 요소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을 이루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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