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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위치를 알라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벌과 나비는 멀리서도 꽃향기를 맡고 꽃을 찾아간다. 새들은 아무리 멀리서도 정확하게 제 집을 찾아간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계절의 순환을자연순리라고 한다. 순리 속에 흐르는 인간노력의 과학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12.1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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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벌과 나비는 멀리서도 꽃향기를 맡고 꽃을 찾아간다. 새들은 아무리 멀리서도 정확하게 제 집을 찾아간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계절의 순환을자연순리라고 한다. 순리 속에 흐르는 인간노력의 과학과 문명은 예측불허의 사고나 사건들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기에 좋았더라.(창1:31) 그런데 보기 좋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일그러지고 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것은 시조 아담의 위치 이탈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동산은 가시와 엉겅퀴가 돋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하고 말았다.

아름다움이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가능하다.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골키퍼 김 모 씨가 위치를 이탈했다. 골키퍼의 위치는 골문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골키퍼가 공격수로 돌변해서 감독의 눈을 어리둥절케 만들었다. 결국 위치이탈로 그는 퇴출 당하고 말았다. 음성과 얼굴과 감정과 마음이 서로 다른 것 만큼이나 누구든지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기질들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빈손으로 보내지 아니하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다.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다양한 개체가 모여서 함께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 것은 언제나 상대적 일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것은 미운 것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웃는 것은 우는 것 때문에 더욱 좋은 것이다. 지구 전체가 금덩어리라고 할 때 금덩어리 가치는 흙처럼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돌발해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불행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사탄의 시조는 원래 천사 장 루시퍼다 그런데 그가 자기 위치를 이탈해서 하나님 자리를 넘보다 추방 당했다.

피조물인 루시퍼가 하극상을 일으켰다. 아름답던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자리 이탈로 가장 보기 흉측한 악마로 변했다. 천사로서의 자리는 주의 보좌를 지키는일, 구속받는 성도를 지키는 일, 천사로서의 역할과 자리는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관점에서 자리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 땅덩어리는 그렇게 넓지도 않으며, 토질이나 지형도 좋지 않다. 그러나 저들이 세계 속에 차지한 위치와 역할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단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탓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저들 자리를 섭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아랍의 인구가 3억이면 무슨 의미가 있고, 빈 라덴을 앞세워 자기 땅 찾기를 빌미로 미국 무역센터를 폭파하면 자신들의 우월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들은 얼마나 무지한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 했다. 왕의 위치와 선지자의 자리는 정교분리 원칙에 의하여 서로 다르다. 그러나 사울은 왕권을 발동하여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 반란이요 사울의 하극상이다. 교회 내에서도 자기 자리가 있다. 목사의 자리, 장로의 자리, 권사의 자리, 집사의 자리, 평신도의 자리가 있다. 각기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그 직분은 아름답고 충성스런 종이란 칭찬을 하나님께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리를 이탈 할 때 교회에서 문제가 야기되고 교회는 소란하고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왜 교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 되는가? 그것은 바로 자리 이탈이다. 교회 안에서 성도의 자리는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교회만큼 차별 없는 자리는 더욱더 없다. 

교회에서 일하는 영역상 구별된 이름을 직분이라고 한다. 그것은 직위와 계급 같은 차별이 아니다. 다만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이 있다는 구별뿐이다. 여자와 남자의 자리가 차별 아닌 구별이 있는 것처럼 교회 직뿐 또한 구별이다.

문제는 이 자리에서 나는 지금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아름다움도 미움도 비춰질 것이다. 나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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