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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철학자 말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8 18:00
  • 호수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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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성수동에 살 때, 애들이 아주 어렸을 때인데도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KBS 교향악단 회원권을 끊어놓고 다녔다

한달에 한번씩 밤외출을 했다. 육아에서 벗어난 나만의 오롯한 시간이었다.

고양시로 이사를 오니 예술의 전당이 너무 멀어졌다.

30키로 정도 되는 거리가 이젠 보통 두 시간이 걸린다.

보고 싶은 전시나 연주회가 있어도, 그래 이렇게 꼭 힘들게 긴 시간을 들여 가야하나, 대체할 수도 있잖은가.

서서히 횟수가 줄어가더니 코로나 이후로 간 적이 없다.

그렇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상실감이 줄어든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에게 굳이 얽매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가고 같이 할 수 있을 때는 같이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뭐 어떤가,

사실은 예전부터 삶은 그렇게 이어져 왔지만 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한계를 알게 된 것이다.

포도를 시다고 하며 물러선 여우가 되어 간다.그런데 그 여우가 싫지 않다.물러서는 여우를 비겁하다고 생각하는데 지혜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는 이솝의 동화를 현대판으로 썼다.열심히 노력해서 한 여우가 포도를 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 포도는 정말 신 포도였다.

그러나 나무 밑에서 쳐다보고 있는 여우들의 부러움 때문에, 시디신 포도를 맛있다는 듯 먹다가 위궤양에 걸린다.  이솝의 여우가 자신을 보고 살았다면 케스트너의 여우는 자신보다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 현대인이다

부천에 아트센터가 생겼다. 마침 지하철 서해선이  열려서고  한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다. 기뻤다.

이왕 짓는 것, 멋지게, 오래봐도 새롭게 앞서가는 건물로 짓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만큼은 못하더라도,

사실 더 못할 게 무언가, 아쉬웠지만 내부는 좋았다.

객석이 무대를 감싸는 빈야드형태로 무대와 객석이 함께 하는듯한, 다정다감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지자체 건립 클래식 전용홀 중에서는 최초로 파이프오르간도 설치했다. 

말러 2번 부활을 연주하기 위해 엄청난 군단의 연주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무대 뒤의 합창석도 가득찼다. 부천,고양 수원시립 합창단들이 함께 했다. 수를 세려다가 그만뒀다. 세상에 하프가 두 대에 콘트라바스가 무려 여섯 대, 그러니 무대는 가득차고야 말았다. 무대 위의 어수선함이라니, 고요히 앉아서 그 어수선함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니,

지휘자가 등장하고 일 악장이 시작되었다.  말러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표현되길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뭔가 불안하다. 강렬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다가오는 선의 희열. 말러는 1악장을 마치고 바로 2악장을 시작하지 말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5분 정도 휴식을 가지라고 했다. 2악장은 1악장과 너무도 달랐다. 마치 덴트롱 가지에 어느날 아침 꽃이 수북하게 피어난 것처럼......평화로운 경이로움이랄까, 그러나 말러는 2악장을 말했다. 사라진 젊음과 잃어버린 순수함의 서글픈 회상이라고.....노년 앞에서 서글프지 않는 것이 있으랴만 서글프다 하여 아름답지 않는 것은 아니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 소란한 삶 속으로,3악장의 분위기를 말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타악기가 득세를 하는 악장이다.리듬은 정신이 없다. 모든 악기들이 저높은곳 마지막 지점을 향하여 비상한다. 말러의 말처럼 소란한 삶이 연주된다 지휘자는 그 소란에 채칙을 가한다.

4악장은 태초의 빛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으며 ‘대단히 장엄하게 그러나 소박하게’ 라는 연주 지시가 있다. 장엄과 소박이 한 선에 있을 수 있는가. 오 붉은 장미여 노래하는 메조 소프라노요란하지도 강하지도 않는 소리로 음악당을 일시에 제압하는 소리 모든 악기중 가장 위대한 악기가 목소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소리. 그렇다. 장엄하면서도  소박한 소리가 아닌가. 짧아서 더 여운이 강했다.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었다

 5악장의 합창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수많은 사람이 내는 작은 소리,크게 얼마든지 낼 수 있지만 절제된 소리가 주는 고급함. 그 아름다움에서 삶을 본다. 내 글은 큰소리가 아닌가, 버럭 지르는 소리가 아닌가, 고요함도 없고 절제도 없는, 무분별한것

<헤어질 결심>을 세 번 보았다. 두번은 영화관에서 한번은 비행기 안에서 ,박찬욱 감독이 그랬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안쓰고 싶었다고, 베니스의 죽음에서 완벽함을 보았기에....그런데도 안 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음악으로 대체 할 수가 없었다는 뜻이리라. 정말 근사하던 여자 지휘자의 이야기 <타르>에서도 말러의 교향곡이 연주된다.

 말러는 철학자다. 그의 음악에서  철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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