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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세대’ 논단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20)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8 17:23
  • 호수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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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우리는 모두 꽃입니다”

2. 나를 사랑으로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일만 명의 스승을 통해 날마다 지혜를 배우며 사랑을 익히니 행복합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평안을 누릴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사랑과 행복을 누비며 사는지 인생의 신비요, 은혜입니다. 가수 장기하 씨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랫말처럼 휘황찬란한 SNS의 일상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저의 목표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겠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행복과 평안을 미리 경험하다가 “진짜”를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3. 출중한 외모와 탁월한 실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다른 선, 후배들이 멋지게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처럼 저 멀리 달려갈 때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씁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묵묵히 우보천리의 길을 걷는 거북이입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저는 그래서 감사합니다.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오르며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고 콧잔등에 살며시 내려와 한숨 돌리는 나비를 살펴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부족하기에 가르침을 청함에 부끄러움이 없고, 연약하기에 나의 잘못을 인정하며 살펴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4. 학창 시절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고, 저를 아는 사람들이 저를 회상하면 “착하고 재미있는 친구” 정도려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하얀 이팝나무나 연보랏빛 오동나무, 등나무꽃처럼 인생의 봄에 꽃을 피우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인생이었고, 지금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5. 산에 피어도 꽃이고 / 들에 피어도 꽃이고 /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 몰래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 모두 다 꽃이야 / 모두 다 꽃이야 (국악 동요 “모두 다 꽃이야”, 류형선)

6. 동요의 가사처럼 나도 꽃이고 너도 꽃이고 어디에 피어도, 언제 피어도 모두 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할미꽃이어도 방긋 웃으시고, 이름 없이 피어도 활짝 웃으시고, 몰래 피어도 미소 짓는 분이시거늘 그 무엇이 중요할까요? 그분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날 수만 있다면 내 삶은 성공한 것일 텐데.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웃음꽃을 선물하는 우리는 모두 꽃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은혜(恩惠)와 은애(恩愛)”

1. 영성이란 무엇일까? 나는 영성을 영력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생각하는 영성의 대가가 되고자 나는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다. 다양한 은사를 받았으며 기도하면서 상대방의 문제와 현재 상태를 볼 수 있었고, 의식 없는 중환자의 영혼이 흰옷을 입고 머리맡에 다소곳이 앉아 천국 갈 준비하는 것도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영성을 쌓는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순간 내가 추구하는 영력과 무당의 도력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맞닥뜨렸다.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영안이 열리는 것 이상이 있지 않을까?

2. 내가 추구하던 영력은 영성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선수들이 동계훈련을 통해 몸과 마음과 기술을 갈고 닦아 일 년의 성적을 얻듯이 영력을 쌓고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남산 위에 소나무처럼 반석 위에 정착하여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혹독한 한겨울에도 푸름을 지켜나가는 사철나무가 되는 것이다. 삼인성호를 뛰어넘는 저 사탄의 세 치 혀에 놀아나지 않는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을, 강한 용사 삼손을 타락시킨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3. 20세기 사극 드라마에서는 연정을 품은 남녀가 연모의 정을 고백했다면 최근 드라마에서는 ‘은애’라는 말로 사모함을 전한다. ‘은애’란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혹은 부부간의 사랑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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