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신뢰하는 믿음

1. 바나바훈련원의 초대 원장님이셨던 이강천 목사님께서 코미멀(이강천, 쿰란출판사, 2011)이라는 책을 발간하시면서 당시 목회자영성훈련 중이던 젊은 전도사들과 함께 코미멀순례길을 떠나셨다. 화개장터, 꽃지해수욕장, 검룡소 등 성경적 원리를 각 지역의 특색과 연결하여 쉽게 설명한 책인데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직접 현지에 방문하여 코이노니아, 미션, 멀리플리케이션의 성경적 원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신앙과 목양의 적용에 대해 토의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점은 당시 이강천 목사님과 새파랗게 어린 전도사들이 함께 여행하며 토의를 나누는데 전혀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어른들과 토의를 하면 자유로운 토의가 아닌 일방적인 가르침과 훈육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이강천 목사님은 터무니없는 의견조차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며 수용하시며 가르침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목회자로서 의견을 나누어주셨다. 그로 인해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더 다양하고 풍성한 토론을 통해 스스로 더 깊고 넓게 깨닫게 시간을 제공해주셨다.

2. 저서를 통해, 세미나와 설교를 통해 이강천 목사님께서 자주 언급하시는 내용이 있다. 밀양의 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뒤 청년부의 재정을 끊으신 내용이다. 항의하는 청년들에게 다 큰 성인들이 언제까지 용돈을 받고 살 것인지 혼을 내시며 이제는 다 큰 성인답게 청년부가 아니라 남전도회, 여전도회와 같이 자립 기관인 청년회가 되어 교회의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라는 권면에 큰 도전을 받고 청년들이 영적, 심적인 도약을 경험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숱한 이들이 청년들이 일하기 싫어한다고 오해를 하곤 한다. 헌신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아니다. 십 대에 불과했던 유관순 누나가 독립을 위해 한목숨 내던진 것처럼 허다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와중에도 교회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자 준비된 일꾼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날까?

3. 아직 4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필자 또한 20대 중반의 조카들을 보노라면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치기와 미숙함을 발견하곤 한다. 하물며 삶의 연륜과 지혜를 갖추신 어르신들께서 청년들을 보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같이 노파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사랑을 담은 조언과 지도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자립적인 청년회가 아니라 청소년부의 연장선인 청년부로 만드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곤 한다. 사랑과 정성을 쏟았건만 의도와 달리 결과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역사의 변증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한 시대를 발전시켰던 동력이 다음 시대의 발목을 잡는다.” 필자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열심히 주산학원에 다녔고,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마지막 시험에서 주산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그 자격증의 용도는 한 줄의 이력서로 끝이 났다. 상공회의소에서는 더는 주산에 대한 시험을 관리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대는 주산자격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 어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싫어할 것이고, 어른들의 문화를 싫어한다고. 혹시 “할매니얼”이라는 신조어를 아는가?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맛과 취향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즐겨 드시던 약과, 흑임자 등을 즐기며 어르신들의 취향인 트로트가 이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어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先生)님들이 후생(後生)을 대하는 태도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상견례에서 예비 시어머니들의 단골 발언이 있다. “딸처럼 생각하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21세기에는 고부갈등이 사라졌을까? 아나운서 출신 연예인 박모 씨는 시어머니와 함께 쇼핑도 하고 목욕탕도 간다. 진짜 시부모의 딸이 되었다. 그래서 시댁에 가자마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시어머니에게 빨리 밥을 해달라고 재촉하고 반찬 투정도 한다.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서 시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이게 딸이다. 며느리가 아니라 딸을 입양했다면 정말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5. 교회에서 청소년, 청년이 교회를 출석한다는 것은 어쩌면 교회라는 시댁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봉사나 헌금 생활은 다 큰 성인이니 책임감을 느끼고 성실히 잘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무총회를 비롯한 직원회 등 그 어디에서나 발언권이 가질 수 없고, 청년들의 목소리는 묻히기 일쑤이다. 심지어 청년부실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청년들은 교회를 떠난다. 다른 교회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에 차고 떠난다. 지역 내 좀 더 큰 교회들을 찾아간다. 대형교회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대형교회라 해도 목회자와 당회를 비롯한 어른들의 생각이 깨어있지 않으면 허사이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5. 그렇기에 요즘 청년들은 모교회를 떠나 대형교회로 간다. 선한목자청년교회, 예능청년교회, 동래청년교회 등 본교회에서 청년회가 독립된 교회 청년들의 헌신도가 높은 이유가 있다. 부딪히고 깨지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마음껏 다양한 사역과 훈련을 통해 믿음의 성인이 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교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며, 기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교회, 기쁨으로 헌신하며 자신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 배회한다. 종리스찬 TV를 운영하는 이종찬 전도사는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청년들이 몰려고 있다. 이강천 목사님의 책에 소개된 적이 있는 서민기 목사는 30~40평 남짓한 아버지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전도하고 영적인 용사가 길러냈다.

6. 물고기 중에 보면 서식하는 곳의 넓이와 깊이에 따라 몸집이 달라지는 어종들이 있다. 어항과 수족관, 작은 연못과 넓은 강과 댐에서의 크기가 달라진다. 안전하기는 어항과 수족관이 제일 안전하다. 천적의 위험도 없고, 때에 따라 공급되는 먹거리가 있으며 수온과 수질도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다 못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항과 수족관에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자기 몸의 100배 이상 점프할 수 있는 벼룩이 작은 상자에 갇히면 절대 그 이상으로 높이뛰기를 할 수 없듯이 어항 속에, 작은 상자 속에 보호받는 청년들은 절대 높이뛰기를 할 수도 없고, 그 몸도 성장할 수 없다. 배우 정은표 씨의 아들인 정지웅 씨는 TV프로그램인 <영재발굴단>에 출현한 바 있다. 그리고 정은표 씨는 자기 아들의 영재검사를 담당해주셨던 교수님의 조언을 잘 실천하여 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 영재검사를 담당하셨던 교수님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은 좋은 그릇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부모가 조급함을 가지고 이 좋은 그릇을 빨리 채우려고 하면 넘칩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 그릇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잘 따라가 주면 가득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그릇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언제든지 자기가 스스로 채울 수 있습니다.”

7. 해방 직후에는 시골에서는 면서기가 최고의 직업이었다고 한다. 경제의 발흥기에는 대기업이 선망의 직업이었으며 IMF 이후에는 공무원 합격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AI와 인공로봇이 발전은 인간의 직장과 직업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준비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을 해야 할까? 아니할 수는 있을까? 미국의 한 주에서는 AI가 인간 판사를 대신하여 판결문을 작성하고 명의라고 소문난 인간 의사의 문진율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인공로봇이 등장하는 이 시대에 청년들에게 과연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준비하라는 충고할 수 있을까?

8.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교회에, 사회에 소중한 아이들을 보내주셨고, 귀중한 청년들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사랑과 정성을 쏟아 우리 청년들이 족히 열 배는 성장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청년들이 백 배는 성장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이 충돌을 일으킬 것이고, 우리의 생각과 청년들의 부딪힐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언제가 되어야 믿음의 후배들을 보며 안심이 될까? 50세? 60세? 정답은 내가 믿는 순간이다.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가 환갑이 넘은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믿음이 없으면 후배의 나이가 100세가 넘어도, 며느리의 나이가 100세가 넘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일에 아예 손을 떼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달라는 것이다.

9. 여(余)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이후로 주로 승합차를 운전했다. 그래서 제동이 잘 되는 승용차가 오히려 불편하다. 또한 아직은 젊기에 선배 목사님들과 함께 이동시 승합차 맨 뒤쪽에 착석한다. 관건은 운전하시는 분이다. 주로 승합차를 운전하셨거나 안전하게 운전하시면 상관이 없지만 승용차만 운전하셨거나 승합차를 타셨어도 조수석에만 타셨던 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맨 뒤쪽은 롤러코스터 변한다. 사람은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필자 또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의 사역과 결정을 흔쾌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담임이 되고서 앞서가는 지도자의 고뇌와 고통을 깨닫게 되었다. 말없이 헌신하는 어른들의 보이지 않던 희생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점점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워진다. 왜 길에서 앞머리에 롤을 꽂은 채 다니는지, 옷은 왜 저렇게 입는지, 저 유치찬란한 영상이 정말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10. 우리는 청소년, 청년들을 향해 다음세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정성껏 가르치고, 양육하며 길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부터 수도 없이 외쳤던 말이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대다수 교회에서 50대 이하를 찾아보기가 지경에 이르렀다. 30년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열심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진리를 사칭하는 이단에는 다음 세대가 넘쳐나는데 왜 진짜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서는 검은 머리가 사라져갈까를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이단에서 벗어났고, 이단이 잘못된 단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단 공동체를 그리워하며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만약 어른들 자체를 싫어했다면 정통교회나 이단이나 모두 젊은이들이 사라져야 마땅하다. 서두에서 거론한 것처럼 MZ세대, 알파세대가 686세대, 베이비붐 세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어른들의 경험과 취향을 신기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할매니얼’이라는 유행의 저변에 있는 생각이다. 문제는 소통이 되지 않고, 소통은 거부한 채 본인의 생각만 주장한 채 일방적인 지시만 하는 어른을 피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어른이 아니라 ‘꼰대’를 피하는 것이다. 80대인 이강천 목사님께서 30~40대 후배 교역자들과 편안한 소통이 되는 것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기 때문이다.

11. 그렇다면 청년들이 꿈꾸는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첫째, 경청과 소통이 있는 교회이다. 일방적인 강요와 지시가 아닌 소통이다. 둘째,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는 교회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키우겠답시고 멸균된 공간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이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하게 키우는 것이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흙과 모래를 만지며 자라야 더 건강해지듯 청년들은 온실 속에서 키워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실수를 허락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홈런왕 베이비 루스는 삼진 기록은 홈런 기록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그는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홈런왕이 될 수 있었다. 청년들의 실수와 실패를 허락하고 그들의 실수와 실패를 책임져 주는 교회이다. 셋째,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교회이다. 나의 안목과 생각의 한계로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청년들을 제한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이다. 우리의 조급함으로 청년들 가운데 은혜를 채우려 하면 오히려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청년들을 믿어주면 영적인 그릇이 더 커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커진 그릇을 채우실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청년들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보다 더 급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청년들을 세우실 것이다. 그분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우리는 그저 주님의 사역을 거드는 ‘무익한 종’임을 기억하고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어르신들만 가득한 교회를 온 세대가 가득한 건강한 교회로 이끄실 것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