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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114)에스더서의 신학적 구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6.29 18:25
  • 호수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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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대 제13대 총장, 현 명예교수

이런 위임 있는 큰 잔치에서는 정장의 예복을 차려입었다. 페르시아의 왕은 자주색 예복과 안에는 흰 줄무늬로 장식된 자주색 베옷을 입었다. 왕이 상을 베풀어 영광을 나타내는 예복은 일반적으로는 전제가 한 가지 색조로 되었다고 한다. 큰 금면류관은 왕의 면류관(kether)과는 다르게 좀 열등한 것(atarah)을 말한다. 그러나 왕은 모르드개에게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나오게 하여 나라에서 가장 높은 신분임을 백성들에게 과시케 했다. 이 모르드개의 아름답게 장식한 예복은 그가 유다인들의 죽음 앞에 슬픔으로 굵은 베옷을 입었던 모습(4:1)과 아주 대조적이다.

연회의 결론적 내용은 국가적으로 총동원되어 유대인들을 완전히 학살하려는 음모를 완전히 반전시켜 축하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수산에 거한 유다인들은 13일과 14일에 모였고 15일에 쉬며 이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즉, 개종자)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한 기일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키며 축하하고 폐하지 않고 신성화하기로 작정하였다(9:26-32).

요약하면, 이야기의 구조를 10개 연회의 항으로 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즉, 두 개씩을 다섯 개로 묶어서 전체를 구성한 이야기 구조로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곧바로 접하여 쌍을 이루지 않고 두 연회 사이에 세심하게 일치를 이루어 조화되는 구조가 있는가 하면, 한 쌍을 이룬 그 두 연회 간에 통합을 이루기도 하고 정반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형태로 오래도록 남아있는 에스더서의 실제적 목적이 부림절을 정당화시키고 정례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부림절은 유다민족이 전체적으로 축제 기분의 진수성찬을 특별히 대접하는 2일간의 축하 축제가 계속되는 절기이다. 오경의 창조 기사의 서론격인 창세기 1:1∼2:3과 아주 흡사하다. 즉, 창조 이야기의 가장 실제적인 목적이 7일에 한 번 있는 휴식의 한 날(안식일)을 경축하여 준수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일곱 가지 목록은 단지 그것만 계시하려는 7일간의 창조개요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림절의 의미는 유다인이 모두 멸절될 위기에서 구원받게 됨을 기뻐하는 축제이면서도 포로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라는 회복의 희망을 함께 꿈꾸는 승리의 축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구원사건에 모두가 기쁨의 축제를 통해서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근원적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가 되는 잔치를 가지게 되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더욱 깊은 뜻은 하나님의 구원사의 궁극적 목표인 여인의 후손으로 나타날 메시아를 향한 씨 흐름의 단절 위기인 모든 유다인의 죽음에서 역전승하여 원수를 갚고 오히려 유다인 전부가 살아 씨, 즉 민족 전체가 구원받는 기쁨을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C. 대응적 구조

에스더서 구조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이미 위에서 살핀대로, 대체로 교차성(Chiasm)과 대칭성(Symmetry)과 이중성(Twoness)으로 나타난다.

1) 교차성적 구조

교차성이란 에스더에서 나타나는 사건, 사건에 보이는 주요 특징에서 볼 수 있다. 이 주요 특성은 두 사건을 서로 비교할 때 알 수 있는 특징이다. 기쁨에서 절망적 위기로, 절망적 위기에서 대역전극의 구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애통과 슬픔에서 절기를 영구히 지킬 정도의 기쁨으로의 전환 등의 사건의 교차가 에스더서에는 계속된다.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는 기쁨은 하만의 유다인 학살로 인한 위기로 절망적 상황이다. 모르드개의 통곡은 유다인 전체의 위기와 금식으로 이어지고 유다인의 구원과 기쁨의 잔치 절기는 하만의 위세 등등한 음모로써 처절한 멸망의 결말 등이 주제는 경고와 소망, 소망과 경고를 주고 있다.

기쁨의 삶에 언젠가 절망적 위기가 올 수 있고 최악의 절망과 통곡에도 승리와 기쁨의 때가 있다는 주제가 교차되어 에스더서를 구성하고 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모르드개가 높은 신분에 등극된 것이 모든 유다인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되는 것이 사실이나 하만과 같은 대적이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유다인들은 지금의 당분간의 슬픔에 좌절해서도 안되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 같은 당분간의 행복을 기뻐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에스더나 모르드개 같은 민족 자존심의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지 않고 특별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현재의 그 행복은 다음 시대에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에스더나 모르드개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하나님이 돌보시는 한, 지금의 행복한 승리의 결말이 장래의 계속적 행복의 결말을 내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에스더서의 교차성 구조는 통곡과 위기에 위로가 되고, 행복과 승리에 경고를 준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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