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맑게 해가 난 날 밝은 햇살 때문에 눈에 피로가 가중되니 밖에 있게 되든지 운전을 하게 되면 영락없이 선글라스를 씁니다. 이 안경의 덕목은 강한 햇빛을 가려주는 기능 말고도 있습니다. 이걸 쓰면 멋져 보이거든요. 물론 혐오스럽다는 다수 의견도 있으니 내 나름대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연예인들은 밀폐된 공간인 무대에서도 이걸 쓰고 또 종종 밤에도 이걸 쓰고 다니는 걸로 봐서 혐오스럽다기보다는 멋진 자기 연출이라는 쪽이 아무래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렇게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봄철에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먼 산을 바라볼 때의 광경은 선글라스를 쓰고 보아야 더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 6월로 가면 푸른빛 계통의 선글라스는 정말 제격입니다. 계절에 관계없이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의 실루엣도 햇빛의 난 반사를 약간 줄여 주는 선글라스를 쓰고 보면 더 오히려 더 선명하고 청쾌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쓴 ‘레이벤’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선글라스는 박정희 대통령도 즐겨 썼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나 기관원, 형사 또는 범죄자를 식별하는 캐릭터로 사용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기능도 매우 다양해진 일상 용품입니다. 색깔도 다양해지고 그 농담(濃淡)의 정도도 천차만별이어서 심지어 늘 쓰는 상용 안경에도 개성을 따라 색을 넣어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향유고래의 불결한 토사물이 최고급 향수의 재료인 용연향(龍涎香)인 것처럼 그 정체를 알고 나면 진실은 호도되는 경우가 있지요. 선글라스를 쓰고 경치를 보는 묘미는 거기 있습니다. 산의 여러 부분들을 다 보여주지 않고 원경(遠景)을 그리는 화가의 그림처럼 얼기설기 얼버무려 윤곽만 실하게 보여주는 묘미 때문에 대충 보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에 가까운 거지요.

산 능선을 헤매던 시선을 거두어 자동차 백미러를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 든 중년의 사내 하나가 맥아더 장군이나 미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혹은 아널드 슈워제네거 같다는 소회는 그야말로 선글라스가 가져다주는 착각입니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들어가 봅시다.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멋진 것이 아니라 선글라스로 가려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그런 이상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래로 축 처진 눈꼬리를 포함해서 거무스름한 얼굴을 반쯤 가려줍니다. 눈동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어 의외로 생각 깊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선글라스가 주는 어두움 때문에 대충 보게 되니 자글자글한 주름살도 희끗희끗 드러나는 흰머리도 가려집니다. 가까이 보지만 먼 산처럼 실루엣만 나타나니까요. 그렇게 못 볼 모양새가 가려지니까 겨우 보아줄 만한 모습이 되는 것이지 사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어림도 없지요. 그러니 남들 보기에는 아주 꼴불견일 수도 있는 모양을 나 혼자 대충 즐기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그건 얼마나 재미있는 착각 게임인가요. 본래의 나를 보기 보다는 왜곡된 나를 보고 스스로 나르시시즘에 빠져드는 모양이니까 말입니다. 

기왕 선글라스를 낄 바에는 그 안경으로 남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차피 피사체의 본래 모습을 적당히 왜곡시키는 기능이 있을 바에는 흠과 티를 가려주는 그 기능이 덕스럽지 않을까요. 멀리서 실루엣만으로 사람을 보아주면 됩니다. 풀어헤친 단추나 때 전 와이셔츠 깃이야 못 본다고 별일 난답니까?. 부러지거나 벌레 먹은 가지는 산에서도 추하지요 만 초여름 산들을 푸르게만 보아준다고 여름이 아니 올 바도 아닙니다. 흰 머리카락이나 자글자글한 주름은 아예 보지도 못한다면 그도 좋은 일이 아니겠어요?.

그 시야에서는 산들이 살아나고 꽃들이 더 곱게 피어납니다. 새잎들이 얼마나 더 정갈하게 피는지 써 보면 압니다. 언제 온 산을 다 푸르게 물들이겠어요. 언제 꽃들을 분홍으로 적시겠습니까. 피사체가 아니라 눈을 바꾸는 게 더 좋아요. 안경 하나 쓰면 되는 겁니다. 안경 하나 잘 쓰면 산들, 꽃들, 나무들 뿐 아니라 사람들도 살아납니다. 허물들은 가려지고 산처럼 장한 모습으로만 사람들이 다시 납니다. 

이 요술 안경은 예수님이 쓰시던 겁니다. 그걸 쓰고 보시니 수전노 삭개오가 살아나고 몸 팔아 먹고살던 여자가 5월의 신록 돋는 산하처럼 명쾌하게 살아납니다. 재산 팔아 집 나갔던 둘째 아들이 어찌 살다 왔는지는 도무지 볼 수 없으니 지친 다리 질질 끌며 돌아올 수 있고 도망갔던 비겁도 선글라스로 가려지니 베드로가 돌아옵니다. 주님이 그걸 벗어주며 우리더러 쓰고 살라 하십니다. 그 선글라스 쓰고 5월의 산하로 달려 나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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