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2.23 금 16:59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시사평론 / 정재우 목사파친코와 가족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4.27 17:12
  • 호수 582
  • 댓글 0
정재우 목사(평택성결교회 원로, 가족행복학교 대표)

오늘에사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마지막 장-시작과 끝, 도쿄 1989년-을 다 읽었다. 왠지 모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선자가 남편 이삭의 무덤을 찾아가 아들 노아를 그리워하며 가지고 온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사진이 달린 열쇠고리를 땅에 묻는 장면에 목이 메었다. 긴 가족의 역사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1980년대 말까지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고통의 가족사다. 우리가 다 아는 슬픈 역사적 환경 속에서 탄생한 한 가족 역사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의 애환을 담고 있다. 대를 이어가며 끌어안고 고뇌에 빠져들었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깊이 있게 스케치했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비련의 여인 선자와 그녀의 어머니 양진, 선자의 첫사랑이자 평생 가슴의 연인으로 품고 살아야 했던 한수, 훗날 일본 오사카를 주름잡는 야쿠자 보스인 한수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노아, 사생아가 될 뻔했던 아들 노아를 받아주고 선자 자신을 아내로 맞이한 목사 이삭, 이삭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모자수, 모자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사회로 나와 파친코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노아는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 중단하고 자기 신분을 감추고 일본인으로 살면서 파친코 직장을 다닌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을 얻게 되고 솔로몬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연인과 이별 후 결국은 아버지의 파친코에서 일하게 된다.

파친코는 재일교포가 이국땅에서 부를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눈에는 경멸과 차별을 상징하는 소설적 메타포이다. 파친코로 성공하고 경제적 부요를 누려도 인종차별의 벽을 깰 수 없는 일본 사회를 헤쳐 나가는 재일교포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폐부 깊게 전해져 왔다. 물론 일본인 중에는 전혀 차별의식 없이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자들도 등장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가장 슬픔의 정점을 찍는 장면이 두어 곳 나온다. 병약한 젊은 목사 이삭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2년여 옥고를 치르고 죽기 직전 석방되어 나오자마자 아들 노아와 작별하며 숨을 거두는 순간이다. 그리고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자신의 신분을 완전하게 일본인으로 위장해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파친코 사업으로 성공했으나 어머니 선자가 그를 찾아내어 만나고 간 후 자살하는 장면에선 숨이 막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이삭의 무덤에서 회상으로 눈물짓는 선자의 모습에서 솟구치는 슬픔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가난과 차별을 겪으며 오로지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전쟁과 가난과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던 1세대와 2세대, 그리고 전후 일본의 경제 회복과 성장기에 적응하며 갖은 수모 속에 생존과 성공에 몰두하던 3세대, 정체성 혼란 속에서 여전히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며 자신을 파친코 뒤로 숨겨야 하는 4세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들이 혈통적으로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문화적으로 한국에서 영향을 깊게 받은 걸 감추고 싶어서일까? 일제강점기에 행한 일을 아직도 독일처럼 철저히 반성과 사죄하지 않는 건 자신들의 패전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허망한 야욕을 아직도 버리지 않아서일까? 파친코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환기시켜 주기도 하지만 얄팍한 인종차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편협한 의식에 경종을 울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족사의 삶을 파친코에 빗대어 제시하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뜻밖의 횡재를 할 수도 아니면 일시에 파멸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일교포의 삶은 자신들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도박 같은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삶도 결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을 살아간다. 하지만 파친코의 가족사가 보여주듯이 어떤 고통과 난관에 부딪쳐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첨언으로, 크리스천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작가의 열정과 지구력 앞에 숙연함을 느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이름을 사용한 담대함과 병약했지만, 겸손과 온유함으로 미혼모 선자를 아내로 맞아 일본으로 건너가 일가를 이룬 이삭, 그는 가족사 중심에 신앙과 조선인 정체성을 이어가게 한 장본인이기에 목회자에게 던져주는 무언의 의미와 도전이 있었다.

기독교헤럴드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