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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비밀의 왕국 가야1세기 가야는 기독교왕국이었다 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4.27 16:56
  • 호수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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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진주중앙교회 원로

 

도마는 누구인가?

카이로의 대표적인 골동상으로서 키프로스섬 출신의 타노(Phocion J. Tano)가 운영하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카이로 부근 대피라미드가 있는 기자(Giza)에서 일하고 있던 엘카스르 출신의 농부 하나가 자기네 동네에서 옛 파피루스문헌이 떠돌고 있다는 정보를 타노에게 귀띔해주었다. 타노는 곧 나그함마디 지역을 관장하는 케나(Qena) 골동상 자키 바스타(Zaki Basta)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정보가 있으니 한번 확인해보라고 일러주었다. 자키 바스타는 엘카스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애꾸눈 깡패두목 바히즈 알리(Bahij Ali)를 수배했다. 바히즈 알리는 두 개의 코우덱스를 무함마드 알리로부터 단돈 몇 천원 주고 샀다. 그리고 자키 바스타와 함께 카이로로 가서 타노에게 큰돈을 받고 팔았다. 제2, 제7 코우덱스였다. 이 제2 코우덱스 속에 도마복음서가 들어있었다.

애꾸눈 바히즈 알리는 카이로에서 엘카스르로 귀향하자마자 즉시 무함마드 알리를 찾아가서 알리네 집에 남아있던 코우덱스를 푼돈에 싹쓸이했다. 돈독이 오른 바히즈 알리는 이번에는 중간상을 배제하고 직접 타노에게로 가서 거액을 요구했다. 타노는 그것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거부 집안의 유명한 컬렉터 마리카 다타리(Marika Dattari)양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다타리는 그 가치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구매하여 타노에게 맡겼다. 결국 대부분의 코우덱스가 타노에게로 수집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코우덱스를 다타리-타노 코우덱스(the Dattari-Tano Codices)라 명명케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도레스는 1948년 10월 다시 카이로를 방문하여 그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게 된다.

제1 코우덱스를 장악하고 있었던 알버트 에이드는 유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질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미나 관장은 에이드에게 이 문서를 해외로 반출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러나 에이드는 공항의 세관원들을 매수하여 밀반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코우덱스를 미국시장으로 가지고 갔다. 처음 그는 미시간대학 도서관에 2만 달러를 요구했다. 미시간대학은 너무 비싸다고 구입을 거절했다. 그 뒤 그는 뉴욕에 가서 볼링겐 파운데이션(Bollingen Foundation)에 접근하여 1만2000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볼링겐 파운데이션은 사적인 책 구입은 안 한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안전하게 맡겨놓게 해달라는 부탁마저 거절해버렸다. 에이드는 화가 나서 브뤼셀로 건너가 그 곳 은행의 안전금고에 코우덱스를 넣고 덜커덩 잠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죽고 말았다.

이 코우덱스의 소식을 들은 사람 중에 프로이트의 의식세계를 더 심층으로 진화시킨 그 유명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있었다. 융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융 인스티튜트(the Jung Institute)의 마이어(C. A. Meier)에게 그 코우덱스를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마이어는 그 코우덱스를 추적한 끝에 브뤼셀의 은행금고 속에 그 문서가 잠자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고, 에이드의 부인 시모네 에이드(Simone Eid)가 새로운 소유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이어는 취리히 근교 발리셀렌(Wallisellen)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독지가 페이지(George H. Page)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페이지는 즉각 3만5000 스위스 프랑을 희사했다.

1952년 5월 10일 브뤼셀의 어느 카페에서 매매가 성립하였다. 이 사실은 에이드 부인의 요청에 따라 18개월 후에나 공식 발표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후에 언론에서 “역사의 페이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관대한 희사”라고 평한 이 희사의 주인공 페이지는 이 문서가 불법적으로 유출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단서를 붙였다: “이 문서는 충분한 학구적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 제자리로 반환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연유로 제1 코우덱스를 융 코우덱스(The Jung Codex)라 부른다. 융 코우덱스는 페이지의 소망대로 1975년 카이로 콥틱박물관으로 돌아갔다. 이후 유네스코와 많은 뜻있는 기관의 협력으로 나그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가 정리되고 영역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영지주의 문서 52편, 헤르메스주의 문헌(Hermetica · 헤르메티카)의 문서 3편,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의 번역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 말 나그함마디 코우덱스를 위한 국제협력기구가 결성되었고, 1977년에는 『영어로 읽는 나그함마디 도서』(The Nag Hammadi Library in English)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그 원본 텍스트도 네덜란드 브릴(E. J. Brill) 출판사에 의하여 전 12권으로 1972~84년에 완간되었다. 이 라이브러리는 52종의 성서를 포괄하고 있는데 이 문서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예수의 어록만을 담고 있는 복음서인 《도마 복음서》와 우주론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요한의 비밀 가르침》이 있다. 그중에 제2 코우덱스 두 번째 논문으로 도마복음서가 자리 잡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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