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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 세대’ 논단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1)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03 00:42
  • 호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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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청춘, 청년을 만나다

1. 의료기술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발전은 인류에게 수명을 연장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웰빙을 넘어 안티에이징(anti-aging)과 에이지리스(ageless)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웰빙이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안티에이징과 에이지리스는 건강을 넘어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2. 아이러니하게도 수명은 늘어나고 육신은 청춘에 못지않은 노익장을 과시하나 정신은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몸은 과거와 견주어볼 때 더욱 건강하고 젊어졌으나 정신은 꼰대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꼰대란 나이를 떠나서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는 혐오성 단어로 20대 중에도 꼰대가 있고, 그들을 일컬어 젊은 꼰대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미 떠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붙들려고 하는 노력의 십 분의 일이라도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함이 진정한 청춘의 삶을 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청춘이란 무엇일까? 靑春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을 의미하는 것으로 늘 소녀와 같은 순수함과 지혜로 살아가는 자를 뜻한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늘 푸르른 청춘의 삶을 살라는 명령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 최근 자기 생각과 주관을 앞세우는 MZ세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의미로 MZ세대를 인용하곤 한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정말 MZ세대는 몰상식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세대일까? 아니다. 그것은 낯설고 잘 모르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와 다를 바가 없는 행태이다. MZ세대는 DMZ처럼 위험한 세대가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과 관념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이 문제(M)를 제기(Z)하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4. 포스트모더니즘이 처음 시작될 때, 수많은 이들이 염려를 금치 못하였다.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발발로 인해 고착화되었던 인류사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더니즘 시대는 24색 크레파스처럼 원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핑크색에서 핫핑크, 베이비핑크를 넘어 블랙핑크(?) 등 수십 종류의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운 나만의 색깔을 찾아내며 발전하였다. 그렇기에 새로운 변화를 저어할 필요가 없다. 변화된 세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불변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더 다양해지는 법이다. 아무런 원리와 기준이 없는 변화는 아무런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아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5. 바로 여기에 어른의 역할이 존재한다. 미래는 다음세대의 것이다. 동시에 어른들의 것이다.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체제를 부정한다 해도 너그러운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다. 청년의 생각과 가치관을 함부로 재단하며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고 어른들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모험하며 실수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주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이 세상을 양껏 뛰놀다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요, 집이요,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다. 돌아올 곳이 없는 자의 여행은 방황이자 표류에 불과하지만 돌아올 곳이 있는 자의 여행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요, 성숙과 성장의 세월이 되어준다.

6. 필자는 요엘서 2장 28절의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래는 당연히 미래의 어른이자 주축이 되어 이끌어갈 자녀와 젊은이들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늙은이가 꿈을 꾼다니 무슨 뜻이란 말인가? 자신을 위해서 꾸는 야망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미래세대를 위하여 꿈을 꾸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묘목을 심는다면 그 열매를 먹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자신은 먹지 못한다 해도 사랑하는 손녀가 장성하여 성인이 될 때 할아버지가 심은 과실수들이 튼튼하게 자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묘목을 심는 것이다. 작고 어린, 묘목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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