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목사

죽창을 든 좌익 치안대들은 신발을 신은 채 예배당이며 안방이며 건넌 방을 이 잡듯 뒤졌다. 살기가 등등했다. 용은은 낌새를 알아채고 후다닥 대나무 숲 쪽으로 빠져나가 집 근처 독 안에 몸을 숨겼다. 숨소리가 새 나갈까 봐 입을 틀어박은 채였다. 그 독은 윤임례가 혹시 모를 비상시를 대비해 대나무 숲속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파묻은 것이었다.
“다 뒤져 봐도 없습니다!” 우두머리 격인 사람이 분하다는 듯 씩씩댔다. 그러면서 윤임례에게 말했다. “아짐요, 좋은 말 할 때 자수하라 하소. 치안대에 자진해서 나오지 않으면 우리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용은은 밤이 돼서야 대나무 숲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웃조차 믿을 수 없어 절대 남의 눈에 적발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용은은 그렇게 며칠을 등잔 밑이 어두운 점을 역이용하여 예배당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나 좌익으로 돌변한 이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기에 교회를 벗어나야 했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저자들이 널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걸 모르느냐, 우선 피하고 봐라. 성경에도 뱀처럼 지혜로 우라는 말씀이 있지 않냐, 하나님은 너를 통해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나중을 도모하기 위해 일단 몸을 숨기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도 그걸 원하고 계신다.”
용은은 사람들 눈을 피해 이튿날 새벽에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공동묘지로 피신했다. 널따란 공동묘지는 언뜻 사람 눈에 띄기 쉬우나 이 역시 역으로 이용하면 안전한 곳이 됐다. 용은은 관리가 안 되고 오래된 무덤 하나를 파서 몸을 숨겼다. 막내 용례가 밭을 매러 가는 척하면서 용은에게 주먹밥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용은은 교회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을 돌며 논고랑이나 야산, 또는 친한 이웃집에 숨어 세월을 견뎠다. 콘사이스(concise) 크기 성경을 그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헤진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됐다. 그렇지만 퇴로가 끊긴 인민군들은 지리산 등 산속 깊이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했다. 정읍 읍내는 국군에게 접수됐으나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공산당 치하였다. 공비들이 밤이면 마을로 내려왔고, 낮이면 경찰이 치안을 확보했다. 하지만 부족한 경찰력으로 인해 자위대원들이 부역자를 찾아내 처단하고 있었다. 그러자 좌익 가족들은 화를 피해 모조리 산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밀고를 당할지 몰랐고, 어디서 날아온 총알이 박힐지 모를 세상이었다.
그날, 용은은 11월 10일로 기억했다. 그가 이웃 마을에 피신해 있을 때 산에서 내려온 인민군들이 그 집을 습격했다. 그는 이불장에 숨어,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 전도사 새끼를 반드시 잡아 처단해라.” 두 번씩이나 용은을 놓친 좌익들은 용은을 잡아 애당리와 인근 마을의 본보기를 삼으려 했다. 그들은 용은의 바로 밑에 동생 용채를 붙잡아 고문을 가했다.

“반동분자인 너희 형을 어디다 숨겼어. 너는 알 거 아니냐?” 몽둥이찜질이 가해졌다. “저는 모릅니다. 형이 실종된 지가 한참 됐습니다. 어머니가 큰아들 죽었다고 실성하시다시피 하셨어요. 꼭 저희 형님을 찾아 우리 어머님을 살려야 됩니다.” 용채는 기지를 발휘해 이같이 말했다. 이후 윤임례는 일부러 반쯤 실성한 척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런 용채를 좌익들이 붙잡아 심부름시켰다. 그들은 시멘트 포대에 많은 돈을 넣어주면서 운동화를 사 오라고 했다. 심부름을 떠나는 둘째 오빠를 용례가 보았다.
“오빠, 어디가요?”, “응, 잠깐 저 사람들 심부름 좀 다녀올게.” 용채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날이었다. 오누이는 그렇게 헤어지고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큰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반동분자를 죽였다!” 용채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오빠!” 용채에게 동생 용례가 달려갔을 때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좌익들은 용채를 빙하니 둘러싸고 웃고 있었다. 
용례가 절규하며 울부짖자 그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가해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읍 사람이 됐건, 고창 사람이 됐건 아니면 부안이나 김제 사람이 됐건 한두 번쯤 오가며 봤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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