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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책에 기대書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2.01 14:48
  • 호수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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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서너 번은 잠에서 깨어나 ‘원기날씨’를 본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탓이다. 새벽이면 세상 모두가 잠이 들어선 지, 혹은 정신이 맑아선지 내겐 가장 블루한 시간이다. 블루가 다가오면 잠은 더욱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그렇다고 블루에 사로잡힐 수는 없다. 나를 떠난 다른 세상으로의 진입이 바로 독서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책은 한 작가의 적어도 전 생애의 생각과 기록인 것을,  그 강렬한 힘이 요악스러운 블루를 거침없이 박살내는 것을(물론 그렇지 않은 예도 있지만) 굳이 적절한 비유를 찾는다면 블루는 안개고 독서는 햇빛이다. 마치 오래 입을 옷이라도 사듯 심사숙고해서 집에 데려오지만 책도 사람과 비슷하다.

오 멋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면 거기 이상한 것들이 있기도 하고 시시한 것들이, 혹은 너무 고상해서 무시하고 싶은 것들이 포진해 있다. 물론 내 그릇이 작아서 담기 어려운 책들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블루인데 글이 너무 초록이라면 어울리지 않을 게 아닌가, 평생 문학을 좋아하고 글을 읽어왔지만, 여전히 시는 어렵다.

나는 타고난 방향치다. 그러니까 아주 쉽게 이야기해본다면 어느 골목을 들어가서 한집만 들어섰다 나서도 그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 되어버린다. 아 이 길이면 여기니까 맞겠지? 하고 걸으면 100% 반대 길이다. 여러 번 간 동네 우체국을 찾아가는데 갈 때마다 이 길인가? 여길까? 하며 운전대를 쥔 채 기웃거린다.

오죽하면 위영 넌 저능아야. 혼자 중얼거리겠는가, 시는 건물이다. 그것도 빈 방이 아주 많은 아주 큰 저택. 방을 들어서기도 겁나고 방을 나서서는 더욱 문제다. 루이즈 글릭의 시는 쉽다. 마치 쉬운 산문 같다. 그러니 또 이렇게 쉬워도 시가 되나? 오히려 헤매게 된다. 어느 만큼 깊이 들어가야 할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깊은 건지 넓은 건지 그 둘 다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나 같은 공간치 방향치에게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연필 한자루를 사기 위해 런던을 쏘다닌다. 기실은 연필을 핑계 삼아 겨울날 저녁 거리를 쏘다니는 것, (정소영의 번역이 좋다) 그래야 삼페인처럼 청명한 공기와 사람들이 어울리는 거리가 고맙게 다가온단다.

나의 자아를 벗어던지고 익명의 뚜벅이들이 이루는 공화적 무리에 합류하는 시간이라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명징하기 이를 데 없다. 비유는 실체보다 더 또렷하고 문장은 차지고 아름답다. 거기에 단순함이라는 고졸미까지 풍부하게 포진해 있다. 소설을 줄기차게 읽어왔다. 예전엔 재미있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정말 밥도 하기 싫고 끝을 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이제 내게 소설은 설날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아주 새롭고 설렜으나 지금은 무덤덤하고 그저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설날. 그런데도 올가 토카르츠쿠의 소설은 정말 새롭고 재밌다. 그녀가 그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많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그렇듯이 평범한 행위를 하지만 특별한 사람이고 비범한 공간도 자주 등장한다.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여인은 보는 눈이 달라선지 요즈음 핫하다는 멕시코의 관광지 칸쿤ㅡ카리브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진 지상낙원ㅡ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내게 칸쿤은 가장 천박한 여행지라고 일필휘지, 날카로운 검을 휘둘렀다. 배수아는 여행기가 아니라며 강조를 하는 몽골 알타이를 다녀온 글에서 올가 토카르츠쿠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정말 엽서와 똑같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바로 그런 그림엽서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초라하고 빈약한 버전일 거라는..... 얼마나 머리가 명석해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이리 냉정할 수 있는 건지, 그저 나는 그런 새로운 풍경 앞에 서면 감읍하고 또 감읍하야 머리를 조아리며 읊조리게 되던데,

그렇다고 책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우선 책 읽는 방법도 마음대로다. 마음에 맞는 챕터를 찾아서 읽기도 하고 아예 뒤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금방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 자리면 읽지 않고 도서관으로 가는 책도 있다. 저자가 아닌 독자로서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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