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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4무(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5)김용은 목사의 생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1.11 12:54
  • 호수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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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목사

김 사장은 흥남에서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직원을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야 했다. 그는 흥남시장에 일손 부족을 호소하고 전라북도 도청과 정읍시청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한 달 후 협조공문 사본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갔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여 흥남에서 열차를 타고 꼬박 이틀이 걸려 정읍역에 도착했다. 큰동생 용채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용례가 이십오리 길을 걸어 마중 나왔다. 눈물 젖은 만남이었다. 용석이와 용칠이는 어머니를 도와 일을 했기에 나오지 못했다.


김용은 사장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을 끌어안았다. 어머니도 울었고, 용은도 동생들도 한없이 울었다. 머슴살이 살던 아들이 양복에 맥고모자를 쓰고 택시를 타고 금의환향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김용은은 정읍군청과 전북도청에서 열린 ‘북조선공업지구알선 인부 설명회’에 참석해 노동력 필요 실태를 전했다. 전북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그것도 지방 관공서의 추천이 있어야 참석이 가능했다. 설명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전북도 차원에서 3백여 명을 선발할 예정이었고 그중 스무 명은 김용은 사장의 회사에서 일할 계획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용은은 아버지의 빚부터 청산했다. 용은이 출세해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소성면 사람들에게 금세 퍼졌다. 더구나 그가 흥남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러 왔다는 얘기에 주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달걀 꾸러미와 채소 등을 들고 어머니에게 당신들 자식을 부탁했다. 어머니는 당황하면서도 목소리는 밝았다. 김용은 사장은 용채와 용례를 데리고 흥남으로 돌아왔다. 그해 늦여름 전북 사람 열다섯 명이 공장에 배정됐다. 김 사장은 그들을 위해 기숙사와 식당을 건축해야 했다. 


1943년 12월 13일에 장인이 소천하셨다. 후쿠오카에서 김 집사의 성실함과 신앙 하나만 보고 딸을 주셨던 어른이었다. 김 집사가 흥남행을 택했을 때도 지지하고 기도해 주셨던 분이기도 했다. 김 집사와 부인은 만삭의 몸으로(큰아들 임신) 큰딸 신자를 안고 차를 여러 번 옮겨 타면서 옹진으로 향했다. 김 집사는 황해도 해주와 옹진을 드나들며 장인과 오택환 목사, 해주의 선교부, 그리고 김구, 이승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에 또 다른 불을 지폈다. 김용은 사장은 황해도에 다녀올 때마다 매번 경찰서에 불려 들어가 취조당했다. 


황해도가 아니더라도 거래처가 있는 북청과 나진 등 함경도 해안과 국경 지역을 다녀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김 사장은 출장을 자제하였다. 그런데 일본 경찰보다 더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같은 업종의 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사업이 잘되는 김 사장을 조직적으로 괴롭혔다. 또한 매출은 늘었다 하더라도 경쟁 업체가 늘면서 순이익이 줄어들었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정작 사장인 자신은 빈손일 때가 많았다. 게다가 고향 쪽에서 온 알선 인부들을 먹이고 재우다 보니 숙소 유지 및 식당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김 사장 편에서 도와주던 가타히로도 부모의 가업을 잇겠다고 떠나는 바람에 김 사장은 더욱 외로워졌다. 시대적으로는 1938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받아들였고 이후 각 교단이 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하였다. 이후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노골적으로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기독교 학교를 탄압하는 등 교회 황민화 수법은 날로 심해져 갔다. 주변 상황과 사업이 어려워지자 6개월만 일해도 황소 한 마리 값을 집으로 송금하던 직원들은 사업이 어려운 상황이 되자 점점 불평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김 사장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사장은 우리가 받아야 할 임금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입니다. 우리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으라며 기도를 강요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며 은근히 노동자들을 속박합니다.” 김 사장을 괴롭히는 주동 인물은 어이없게도 고향에서 데려온 면장의 조카였다. 고향에서 노름이나 하고, 여자들을 따라다니며 희롱하던 녀석을 면장이 부탁해서 데려왔더니 적반하장인 셈이었다. “주님, 제가 떠날 때가 된 것입니까? 40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있는데 일본 제국주의와 공산당의 박해에 공장의 문을 닫아야 합니까? 주님 저를 인도하여 주소서.” 김용은 집사는 응답을 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주님이 환상으로 답하셨다.


“네가 가족과 친척과 민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더냐. 나 여호와는 거룩한 예배 받기를 원하노라. 나의 계획이 있나니 네 고향으로 가거라.”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내어 일본에 보내시고, 흥남에서 사업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김 집사를 향한 계획이 있으니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김 집사는 사업을 하면서 아버지의 빚을 갚을 수 있었고, 회사를 정리하면 고향에서 전토를 마련하고 기와집을 지을 수 있었다. 이날의 일을 김용은 목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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