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 임진각 순례자의 교회 담임 )

‘구효서’님의 『인생은 깊어간다』(출판:마음산책)을 읽으며 일부를 옮겨봅니다.

부모님은 선병질이었던 저를 아홉 살이 된 뒤에야 학교에 보냈습니다. 학교에 오가려면 들길 산길을 20여 리쯤 걸어야 했으니까요. 아홉 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나 저에겐 등하굣길이 언제나 벅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덩치가 작고 약했으니까요.

1학년 가을 어느 날,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용트림을 하던 바람은 마침내 제 눈 속에 흙모래를 끼얹고 달아났지요. 함께 걷던 친구가 저를 부축해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꺽다리라고 불렸던 그 친구의 집은 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눈에 흙먼지까지 들어가서였는지 제 몸에는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꺽다리의 어머니는 제 눈을 당신의 혀로 샅샅이 핥아주셨습니다. 깔깔한 모래를 제거할 수는 있었지만, 몸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저에게 금계랍을 갈아 마시게 하고는 잠깐 눈을 붙이라며 자리를 깔아주셨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자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몸은 여전히 뜨거웠고요. 꺽다리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저를 업고 10여 리도 더 되는 저의 집을 향해 저녁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꺽다리 어머니의 등은 꺽다리처럼 크고 든든했습니다. 그게 왜 그토록 낯설던지요. 큰 고개를 넘었습니다. 저를 기다리다 못해 그곳까지 마중 나오고 계신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꺽다리 어머니의 등에서 내려와 포근한 어머니의 등에 업혔지요. 시간이 지나도 그 일은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꺽다리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건넬 줄 몰랐던 제가 끝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저는 아직도 그의 어머니에게 고맙단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못한 인사가 이토록 두고두고 부끄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고맙습니다.

“ 저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무릎을 꿇고 기도해 주시던 어머니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생각납니다. ”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아마도 6살쯤이었을 것입니다. 낮잠을 자는 사이, 어머니께서 시장에 급히 다녀오시며 잠깐 집을 비우셨습니다. 자다가 일어난 저는 놀란 나머지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한참이나 울고 있었는데 옆집 친구의 어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달래 주셨습니다.

그러나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등을 내어주셨고 그 등에 업혀서야 울음이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불러 주셨던 노래,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후에 그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친구 어머니의 등으로부터 살포시 다가온 따뜻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감사하단 말 한마디 못 해 드린 죄송함이 여전히 저에게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그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시루떡 한 덩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야겠습니다.

신앙인들에게도 이런 사랑과 수고로 업어 주셨던 분들이 꼭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때의 여름 수련회, 집회 때마다 뜨겁게 기도하며 방언을 받는 등 성령님의 강권하심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저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무릎을 꿇고 기도해 주시던 어머니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 기도는 어느새 방언으로 그리고 뜨거운 성령체험과 중생의 경험으로 연장되었고 온전히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머니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 신앙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이렇게 신앙을 이끌어 주셨던 고마운 분들을 한번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집사님이 계셔서, 권사님이 계셔서 제가 오늘 이렇게 신앙 안에서 살아갑니다. 집사님, 권사님의 헌신의 열매가 바로 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번 말씀해 드리면 어떨까요!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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