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목사

교회는 그렇게 소년 용은의 인생에 새로운 지표를 제공해 주었다. 긍정적인 생각과 더불어 마음의 폭도 크고 넓어졌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앙을 통해서 깨달았다. 물질을 넘어선 정신과 영혼의 가치, 가족을 넘어선 더 큰 공동체의 존재에 눈뜨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세계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 수는 없었다. 농사지을 땅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터에 시골 마을에 눌러있다는 것은 도무지 희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잡화점 점원이나 이발사로 평생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더 큰 세계, 더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열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 폐결핵을 치료받다
그 무렵 용은은 아버지로부터 전염이 되었는지, 아니면 영양실조 탓인지 잘 먹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리면서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폐결핵에 걸린 것이다. 용은은 폐결핵에 걸리기 전 하루 두 세 시간씩 기도했으나 이제는 30분만 지나도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

놀란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아들 대신 기도 시간을 채워가며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렸다. 정읍이나 전주병원에 가면 쉽게 나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미투리 닳는 것조차 아까워 짧은 거리는 맨발로 다니던 윤임례 어머니는 아들이 기도로 나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 십오리길 예배를 거르지 않으셨다.

용은이 폐결핵으로 일하지 못하는 탓에 집안 살림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아버지! 저희를 돌아보아 주십시오. 저희 가정을 돌아보아 주십시오!” 병을 낫게 해달라고 목숨을 걸고 애끓는 기도를 했다.

“의원되신 예수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주님만이 저를 고쳐 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용은과 어머니 윤임례는 오직 예수 이름에 기대어 기도했다. 어머니는 병만 낫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들어 쓰시라고 했고, 아들은 제 병이 낫는다면 평생 예수께 헌신하여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용은의 병세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가래와 피가 넘어오지 않았다. 병 고침의 신유 은사가 일어난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은사였다. 이 연단을 계기로 용은 가족의 믿음은 날로 깊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든 “아멘!” 소리가 절로 나왔고 하나님께서는 길을 보여주셨다.

◆ 배우고 싶은 꿈과 월명산 기도

폐결핵을 기도로 이겨낸 용은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저는 고향을 떠나겠습니다. 공부해야겠습니다.” 용은은 이미 후쿠오카에 있는 외삼촌에게 그리로 가겠노라고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에 외삼촌은 직장을 다니며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답장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뱃삯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기도하마”라며 용은의 손을 잡아 주었을 뿐이다. 십팔 세의 용은은 채비를 하고 군산으로 향했다. 1899년 개항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군산은 해망동, 영화동, 장미동, 영동 중앙로 1가 지역을 중심으로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양복점, 시계점, 요릿집, 제과점 등이 즐비했다.

전신주가 거리를 따라 이어졌고 가로등이 밤길을 밝혔다. 곳곳에 미두장이 있었고, 붉은 벽돌 양식 건물이 웅장한 모습으로 정읍 촌놈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군산항 부둣가에는 날품팔이하는 조선인들이 지게를 지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군산에 도착했지만 용은에게는 일본 가는 뱃삯이 없었다.

일본행은 주님만 의지해 나온 무모함이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항구에서 월명산 쪽으로 걸었다. 산이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험했다. 당시 월명산은 산 짐승이 나온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숲이 울창했다. 용은은 월명산 정상 아래 비교적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위가 굴 형태를 이루고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이 아들 용은이가 간절히 간구합니다. 제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비록 제가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일본에 가려 하나 그것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길이라면 성령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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