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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정원영 목사의 Book-Life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9.28 17:09
  • 호수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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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임진각 순례자의 교회 담임)

‘리이위’편저, ‘장연’역의 『세치 혀가 백만 군사보다 강하다』(출판:김영사)에서 일부를 발췌하며 우리를 생각해 봅니다.

차고풍금(借古諷今) - 옛것을 빌어서 오늘을 풍자하다옛날의 일을 빌어서 오늘의 현실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 바로 차고풍금의 방법이다초나라 장왕(莊王)이 누대(높은 누각으로 이루어진 성벽)를 구축하는데돌을 나르는 길이 천 리요 흙을 나르는 길이 백 리였다대신들 가운데서 72명이 이 일 때문에 간언하였으나 모두 처형되었다

당시 제어기(諸御己)라는 사람이 있었다제어기는 장왕을 만나러 갔다장왕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간언을 하기 위해서인가?” 제어기가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누대를 건설하는데 돌을 천 리 밖에서 나르고 흙을 백 리 밖에서 퍼 옵니다백성들이 이로 인해 흘린 피가 길을 적실 정도이지만 그들도 감히 간언하지 못하는데 제가 어찌 간언을 하겠습니까그러나 제가 비록 우둔하긴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라는 궁지기(宮之奇)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진()나라에 병탄되었고()나라는 자가기(子家羈)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에 병탄되었고()나라는 희부기(僖負羈)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송()나라에 병탄되었고()나라는 자맹(子猛)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에 병탄되었고()나라는 자서(子胥)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월()나라에 병탄되었고

()나라는 건숙(蹇叔)의 제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위험한 경지에 빠뜨렸으며하걸(夏傑)은 관룡봉(關龍逢)을 죽인 탓으로 상()나라의 탕()에게 사로잡혔고주왕(紂王)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인 탓으로 무왕(武王)에게 천하를 얻게 했으며선왕(宣王)은 두백(杜伯)을 죽인 탓으로 주()나라 왕실을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 임금과 여섯 제후들은 모두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의 간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제어기는 말을 마치자 빠른 걸음으로 궁전을 나갔다장왕이 급히 그를 따라가서 말했다

돌아오게내가 그대의 간언을 듣겠소예전에 나에게 간언한 자들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고 또 불경스러웠을 뿐이오그래서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이었소하지만 그대의 말은 내 마음을 움직였고 불경함도 없었소이 때문에 나는 그대의 간언을 받아들이겠소.” 

이튿날 장왕은 누대 건설을 포기했으며 또 노역하던 백성 수백 명을 돌려보냈다제어기는 옛것을 빌어 오늘을 풍자하는 방법으로 고대에 있었던 세 명의 임금과 여섯 명의 제후들이 현명한 사람을 임용하지 못한 탓으로 나라를 망친 일을 열거했다그리고 이를 통해 초 장왕의 미혹을 일깨웠다.

성경의 역사를 비추어 차고풍금의 지혜를 덧대며 잘못과 회개와 회복을…,

사람 사는 이치는 다 비슷하여 차고풍금(借古諷今)은 동서를 막론하고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와 교회는 어떠할까요? 내 생각과 비슷하면 틀린 말도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조금 다르다면 맞는 말도 문제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비추어 차고풍금의 지혜를 덧대며 잘못과 회개와 회복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 어떤 거짓과 불의도 정당화해버리며 귀 닫고 눈 감아버립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굴복지 않는 선지자적 용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뚤어진 세상에 바른말 하나 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는 더더욱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성도 합리성도 없이 때론 신앙도 잊어버립니다. 그저 잘못된 감정으로만 모든 것을 해석해버립니다. 교회 안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역사를 통한 이런 지혜로움을 주고받고 돌이켜 바른길로 행하거늘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는 우리는 이에 견줄 수도 없으니 시대가 그러한가 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부끄러울 뿐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향한 불꽃 같은 선지자적 용기가 그리운 날입니다. 잘못됨을 알고 통회자복하며 고쳐내는 신앙의 신실함이 그리운 날입니다. 초나라 장왕(莊王)과 제어기(諸御己)가 왠지 그리운 날입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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