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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18 11:23
  • 호수 559
  • 댓글 1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확증편향과 탈진실>

백주! 대낮!의 강도다. 살인범이다. 학살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아파트를 쏘아 어린아이들까지 참상을 입힌다. 내 아이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 사실 러시아의 어린 군인들도 모스크바 출신은 거의 없고 변방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주축이라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누가 뭐래도 이 학살의 원흉은 푸틴이다. 푸틴은 이 시대의 스탈린이자 히틀러다. 그런 학살자도 체면이 혹은 체면을 위한 논리가, 즉 자신의 합리화가 필요한가. 푸틴의 휘하에 알랙산드르 두긴이라는 책사가 있는데 그는 실제 서구에서 꽤 유명한 철학자라고 한다.

그는<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에 입각하여 신념의 문제는 진실을 정의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우리에게는 러시아적 진실>이 있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켜서 사람을 죽고 죽이며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러시아적 철학이라니, 어린아이까지 무차별 학살하는 것이 러시아적 진실이라니, 이런 것이 철학이고 진실이라면 철학도 가고 진실도 가라.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분야별로 방만하지만 다원주의의 모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스레 다원주의로 걸어온 것이다. 다원주의에 <절대>는 없다. 대신 수많은 대체개념, 혹은 신 대신 인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척도가 사라진 것이다. 다원주의는 신의 부재와 가치의 상실로 귀결된다.

현대의 철학은 말한다. 감히 인간이라는 존재를 판단할 진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런 개념들이 인간들을 노예로 만들 뿐이다. 다원주의의 핵심은 절대 가치도 없고 절대 도덕도 없으며 절대 진리도 없다.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굳이 <절대> 혹은 <진리>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맥락>이다.

맥락만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이사야 벌린은 절대 자유란 없으며 그저 개인 안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집약하는 소극적 자유만이 자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자유> 뒤에서 자유라는 善을 제재하던 방종이라는 단어도 사장 되어간다. 아니 이미 사장되었다. 자유면 자유지 거기 어디 천박한 방종이 따라붙는가. 나의 자유가 넘치면 타인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이네는 ‘고요한 골방에서 하는 철학자의 연구가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며 이념을 작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실제 파시즘은 그들이 존재하기 전의 니체를 이용해서 자신들 철학의 기저로 삼았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를 기저로 삼아 ‘러시아적 진실’이라는 논리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2016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탈진실을 그해의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탈진실은 말 그대로 진실이 진실을 벗어난 것이다. 사실 추구와 합리성은 무시되고, 조작된 거짓 정보가 사실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대체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미 탈진실을 넘어 탈사실 까지 도달해 있다.

인터넷의 발달이 우리에게 더욱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수한 가짜뉴스, 오직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확증 편향된 거짓된 사실이 사실의 옷을 입고 진실처럼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들에게 진실이나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유익, 혹은 감정이나 정치성향, 즉 논리상의 나의 <편>을 위하여 탈진실과 탈사실을 버젓이 해석하고 조작해 낸다.

우리나라 역시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네 편이면 무조건 틀렸다는 확증편향이라는 전쟁을 하고 있다. 거짓과 악이 소용돌이치는 역사를 모르지 않지만, 확증편향이 이렇게 심화한 시대가 있었을까, 아침마다 조작된 거짓과 과장된 진실 혹은 자신의 소소한 경험이 마치 검증된 진실처럼 sns를 통해 우리 앞에 나선다.

물론 래거시미디어들도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려 고난도의 술수를 부리고 있다. 무엇보다 확증편향자들은 정치세력들에 가스라이팅 되어 이미 그들의 노예가 되어 있다. 삶은 ‘生과 死’ 그 가운데 존재한다. 밀물 후에 썰물이 다가온다. 생이 시작됨과 동시에 죽음 역시 시작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절대 가치와 절대 진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빙증한다. 어디에서 왔고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설령 그 답을 찾을 수 없거나 다르다 할지라도, 끝없이 사고해야 한다. 인간에게서 신을 제외하는 것은, 근원에 대한 물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진리를 아는 자들이 더욱 정신 차려야 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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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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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소리 2022-08-18 20:45:36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준 좋은 글이지만 쉽지 않은 글이어서 머리 싸매고 정독 또 정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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