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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69)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20 17:15
  • 호수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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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남루한 의복을 입은 여자들이 신체의 대부분을 노출한 채 유아를 등에 업고 간다. 그와 같이 업음으로써 여러 차례 조금이라도 돕고자 함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다리는 남루한 옷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점점 얼어붙어서 나중에는 조그만 발가락이 맞붙어버린다. 남녀 늙은이는 굽은 등과 주름살이 많은 얼굴로서 끝날줄 모르는 먼 길을 걸어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짧은 거리를 옮기지 못하게 된다.

 그들 –노소강약(老小强弱)을 막론하고- 그 고향을 떠나오는 것은 모두 다 이 모양이다. 이와 같이 하여서 과거 일년간 1920년에 15,000명이나 되는 조선인이 만주에 건너왔다. 현재 동부 만주(東北 滿洲)에 산재(散在)하는 조선인의 수는 총계 50만명을 헤아린다.“

3. 재만 기독교의 선교 활동

 앞서 살펴보았듯이 재만 한인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치안 부재의 사회 불안 속에서 생존과 개척을 위해 불굴의 투지로 노력하였다. 이들은 이역(異域)에서의 생활에 심리적, 정신적 안정과 평안을 갈구하였다. 따라서 각종 종교에 적극적으로 귀의함으로 그들의 심신의 위안과 피난처로 삼았다:

“宗敎의 眞髓는 性靈을 修練하고 人心을 開導하는 데 있으므로 敎育과 宗敎는 人間 生活에 必須 不可缺의 要素이다. 더구나 外地에서의 開拓生活에 있어서 無授 孤獨하였던 우리 在滿 僑胞에게는 物質世界에서의 시달림과 困境을 精神世界에서 靈的 糧食을 찾아 慰安을 받았고 依支할 곳을 얻었던 것이다. 韓國移住民이 가는 곳마다 第二世의 敎育을 위해서 學校를 세웠듯이 成人自身들은 마음의 依支를 信仰人에 두고 各種의 宗敎生活을 展開하였다.”

 기독교는 재만 한인사회의 가장 유력한 종교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표 3'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통계는 재만주 일본총사관(在滿洲 日本總事館)에서 조사한 내용으로 1934년과 1936년 모두 기독교 교회당과 교인 수는 전체 종교의 과반수가 넘는 통계로 나와 있다. 기독교가 만주의 한인사회 이주민에게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만주의 시대적인 정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를 형성케 된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입교(入敎) 요인이 있다.

                                표 3. 재만 종교 집합 교회당 및 사원 일람표

첫째, 재만 한인들은 중국 관리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한 자위 수단으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둘째, 재만 한인들은 자녀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입교하였다. 각 종교 단체에서는 포교의 수단으로 학교를 경영하였는데, 기독교 계통의 학교는 전 교육기관의 8할 이상을 차지했다.

셋째, 정착 생활에 따른 심리적인 압박과 외부의 곤란한 일로부터의 정신적인 안정을 가지기 위해 기독교에 입교했다.

 넷째, 만주 이주민의 지위 향상과 복리 증진을 위해 자위단체 조직의 필요성에서 입교했다.

다섯째,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중심으로 노동력과 재력을 집결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입교했다.

 여섯째, 진취적이고 근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재만 한인들에게 재래의 전통 종교들은 보수성과 전근대성을 갖는 반면에 기독교는 이와 반대로 서양의 근대 문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종교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국내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한계에 부딪쳐 만주로 이주한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교회의 조직을 독립운동의 기반으로 삼고자 해서이다.

 따라서 1910년 일제 강점 전후로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만주는 그 시대가 만들어 낸 선교의 황금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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