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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전킨 선교사’(39)군산 선교사 시절, 나의 아버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07 15:49
  • 호수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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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 ~ 1908년 1월 2일)

미국 잡지를 주문했는데 내용 중에 탐슨시튼 시리즈가 있었다. 거기에 인디언 놀이가 설명되어 있었다. 우리는 인디언 놀이를 하였다. 화살과 활을 만드는 방법과 동물을 사냥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겨울에, 우리 집은 온돌방 한 개를 따뜻하게 덥혀 놓았는데, 그 잡지 신판이 나온 그해 겨울, 우리는 그 온돌방에 누워서 그 탐슨 시리즈를 읽고 인디언 놀이에 필요한 화살과 활 그리고 쿠(깃털이 달린 관)를 받는 방법, 큰 쿠 만드는 방법 등을 암기하다시피 하였다. 큰 쿠는 용기가 있고 사냥을 잘하는 인디언에게 주는 상으로 새 깃털로 만드는데 그 쿠를 만드는 방법 등을 암기하였다.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 우리들이 인디언 놀이를 하면서 뛰고 달리고 놀면 어머니가 심판이 되어주었다. 우리를 도와주는 하인들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우리 친구인 홍준이는 우리와 함께 한국식 인디언 놀이인 도둑잡기를 하였다. 대나무로 화살과 활을 만들어줬고 엄마가 갈색 가방 천으로 사슴을 만들어줬다. 홍준이는 볏짚을 쑤셔 넣어서 사슴을 만들어서 숨겨놓았고 볏짚으로 밖에서 전혀 볼 수 없도록 비밀 요새를 만들어줬다. 집 가까이 있는 수풀 속에서 홍준이와 한국식 인디언 놀이를 하였다. 홍준이는 적절한 곳에서 사슴을 숨겨놓고 우리는 뛰어다니며 활을 쏘고 사슴 잡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홍준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인디언 요새를 큰 소나무 가운데 놓고 소나무 주위에 막대기를 세워서 지푸라기로 인디언 요새를 만들어 줬다. 그 시절 겨울에는 신발을 신었지만 봄이 되면 신발을 신지 않았다. 봄부터 우리는 맨발로 다녔다.

어느 여름날, 인디어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길고 푸른 뱀이 내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큰 쿠(grand Ku)를 받고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번에 뱀을 사로잡으려고 맨발로 뱀 위로 뛰어내려 뱀을 잡으려고 하였다. 어린 내가 큰 뱀을 단숨에 잡기는 역부족이어서 오히려 뱀이 내 다리를 휘어 감았다. 겨우 뱀에서 빠져나와 보니 내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집에 가서 이 일을 엄마에게 말했더니 뱀은 잡지 못했지만 내가 용감하였다고 하며 큰 쿠(grand Ku)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였다.

또 나이 어린 우리들이 즐겼던 일은 아버지와의 사냥이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는 사냥을 한다. 엄마도 버지니아 렉싱턴 출신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한국으로 파견 나오기 전, 부모님 친구가 2구경 사냥총을 선물로 했고 6~7장의 개 가죽도 줬다.

나는 1894년 8월 23일에 태어났는데 네 살 때 두 살 아래인 동생과 아빠와 사냥 갔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선교사들 중에 새를 가장 잘 사냥하는 사람으로 소문났는데 그 당시 새 사냥은 우리에게 큰 고기 공급원이었다. 일 년에 두 번 샌프란시스코에 고기 통조림을 주문하였는데 이것은 상당히 가격이 비싸서 자주 먹을 수 없었다. 당시의 한국 재래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위생 상태가 열악했기 때문에, 소고기도 죽은 소를 잡았을지 몰라서 사서 먹지 않았고, 주로 군산이나 궁멀 마을에서 갓 잡은 신선한 생선을 사먹었다. 나중에 군산에서 35마일 떨어진 전주로 이사 간 후에는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순회 설교 후 집에 오시면, 집에서 2~3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사냥하며 오셨다. 아버지가 귀가하시면 아버지 가방에 작은 선물이나 양념한 야생 오리나 기러기 등이 들어 있었다. 부모님은 거위 목을 졸라서 조리를 해줬다. 때때로 초가을에 거위가 이동할 때 아버지는 사냥꾼 옷차림으로 사냥개를 데리고 언덕 밑에 논에 가서 거위를 사냥하였다. 언덕 아래 논바닥에 거위가 앉으려는 순간 아버지가 살살 무릎으로 기어가서 사정거리에 있을 때 총을 쐈다. 아버지가 쏜 첫 총알에 두세 마리의 거위를 잡았고 두 번째 총알로는 이미 첫 번째 총소리 때문에 거위가 다 날아가서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러면 그 사냥개는 달려가서 사냥한 거위를 물어왔다.

또 즐거웠던 어린 시절 추억은 동생과 내가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었다. 둥근 냄비에 쌀겨, 보리를 삶아서 먹이를 줬는데 우리가 먹이를 가져오면 강아지들이 달려와서 먹이통을 빙빙 돌면서 꿀떡꿀떡 하나도 남지 않게 먹어버렸다. 그리고 닭 먹이도 줬는데 즐거운 추억은 닭이 오리알을 품었다가 오리알이 부화하자 오리는 물통에 즉시 들어가서 물속에서 다이빙하고 수영하고 놀았지만, 암탉은 오리 새끼가 병아리인 줄 알고 물에 빠져 익사할까 봐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봤다.

지네에 대한 추억도 있다. 지네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독이 있다. 나는 물린 적은 없었다. 엄마가 가꾸는 밭에서 뱀을 밟을 뻔했다. 꼬리에는 작은 뿔 같은 것이 있는데 이 꼬리로 사람을 치고 사람의 피부에 박고 이것으로 공격한다고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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