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작년 올해 사이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세 번이나 읽었다. 책이 두껍지 않은 탓도 있지만 자유에 대한 그의 철학이 마음에 들어서다. 밀은 ‘절대’를 믿지 않으면서도 진리의 방향성은 확고했다.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람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져도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선언한다. 밀의 자유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억압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개별성이 발현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 자유를 추구함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가치 선언이 숨어있다.

그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배려와 절제다. 밀은 어릴 때부터 놀라운 천재였고 그를 알아본 경제학자인 아버지의 조기 영재교육을 받아들였다. 8살에 라틴어로 투기디데스와 고전을 읽어냈고 아버지의 친구인 경제학자와 거침없는 토론도 했다. 천재이면서 학자이던 그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동인도 회사에 들어가 무려 36년을 근속한 샐러리맨이기도 했다. 동인도 회사를 나와서 대학 학장으로 근무도 했고 정치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평범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십 대 때 신경쇠약에 걸렸지만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로 치유를 받는다. 시로 치유 받은 그의 정서를 생각해보면 그가 섬세할 뿐 아니라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지고지순한 남자로 기억되기도 한다. 밀의 자유론은 평생의 연인이자 아내인 헤리엇 테일러에게 헌정된다.

밀은 24살에 헤리엇을 만났다. 그 때 이미 그녀는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유뷰녀였다. 테일러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적인 여성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였다. 밀과 헤리엇의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아, 이 구닥다리 느낌이라니)로 헤리엇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아픈 밀을 간호해 줄 만큼 남편도 인정하는 관계였다. 테일러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밀은 아무도 초청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헤리엇과 조촐한 결혼식을 치른다. 긴 기다림 끝에 결혼했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결핵에 걸리고 헤리엇은 다시 감기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현재 밀의 유해는 아비뇽에 있는 헬리엇의 묘 옆에 나란히 묻혀 있다.

육체적인 쾌락보다 知的이며 도덕적인 쾌락이 더 우월하다고 한 그의 말은 과연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가?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사유를 명예나 권력보다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를 자유가 통제되어야 할 어떤 상황도 없다는 절대 자유의 현대가 품을 수 있을까?

철학도 사람처럼 늙어간다. 한때는 모든 사람에게 젊음처럼 싱싱한 진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착된 이론이 되어가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탈역사, 탈사실, 탈진실을 외치는 다원주의 시대에서 바라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 밀은 자유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했다. 자유 속에 선택한 결과가 좋지 못하다 할지라도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그러나 자유는 행복한 삶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이지만 자유가 통제되어야 할 상황 역시 존재한다고 했다. 밀의 철학 역시 구식을 지나 유물이 되어 간다.

어쩌면 헤리엇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밀의 선택이었고 자유였을 것이다. 설령 그 사랑의 선택이 사회적 통념의 통제였을지라도, 그리하여 그는 사랑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는 ‘나무의 꿈’이란 시처럼 바람의 푸른 힘은 철학이었고 생이 흔들리는 소리는 사랑이었을까?

절제와 배려의 자유를 스스로 실천한 그의 사랑은 유월처럼 푸르르다. 그의 사랑 속에 그의 철학이 눈부시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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