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임진각 순례자의 교회 담임)

이기주님의 『언어의 온도』(출판:말글터)에서 일부를 옮겨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중독’을 찾으면 무언가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상태,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기술돼 있다. 중독, 나쁜 거 맞다. 중독中毒은 독毒이다. 지나치면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독, 그래서 다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무언가에 취하지 않으면 무언가에 홀리지 않으면 별 재미가 없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럼, 이기주 작가는 어떤 것에 중독돼 있어요?”하고 물을 수 도 있겠다. 난 주저하지 않고 “활자”라고 답할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청계천 근처 골목을 걷다가 퀴퀴한 종이 냄새에 이끌려 작은 헌책방에 들어갔다. 순간 어느 책의 제목처럼 헌책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어서와, 마음껏 펼쳐 읽으렴.” 그때 난 세월과 함께 퇴적된 책 냄새를 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였다. 활자에 탐닉하기 시작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헌책방 골목을 기웃거렸다. 세월이 흘렀다. 아직 활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책을 펴낸 다음 서점을 찾아 책이 머무는 장소를 답사하고 책의 운명을 가늠하는 일은, 일종의 순례巡禮 행위가 돼 버렸다. 여전히 난 활자의 힘을 믿는다. 활자의 집합체인 책을 끌어안은 채 단어와 문장을 더듬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같이 헌책방 그 퀴퀴함이 좋았던 저도 틈만 나면 달려가던 곳이 헌책방입니다. 그래서 글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래서 아쉬움을 달래며 오늘도 부족한 단어와 문장들을 붙들며 분투해 봅니다. 작가는 작가의 길을 중독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중독에 빠져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큽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인가 큰일을 이루게 될 때는 그 시작점에서 중독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냥 좋고, 그냥 좋고, 다 좋아서 그냥 그 일이 하고 싶고, 보다 적극적인 지식 탐구가 이루어지며 전문가의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이가 보다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께 중독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에 대한 중독 때문에 교회가 마냥 좋고, 성도들이 그냥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체험한 은혜를 사모하며 함께 할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 근처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작가가 퀴퀴한 헌 책방에서 그 수많은 활자들과 책들을 탐독하며 즐거워하는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순간 그 헌책들 속에 있는 활자들을 떠나 자기의 활자들을 써내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책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 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냥 좋고, 그냥 좋았던 신앙에서 다 좋은 상태로 예수님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에 중독된 자요 종교인으로만 남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땅 끝에 이르는 사람이요 주님 주신 사명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중독자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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