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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 (60)한국성결교회의 초기 문서 운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4.14 11:47
  • 호수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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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 (교회사)

본지 논설위원전성결대 총장, 현 성결대 교수

- 1945년 해방 이전 잡지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내용은 1권 4호 “敎派의 眞理的 合同”에서도 다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정남수 목사의 창간사에서 이미 밝힌 내용의 설명과도 같다. 정남수 목사는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聖化」의 발간 목적을 밝히고 있다:

“復興傳道隊가 全鮮을 巡廻하며 福音을 웨첬으나 크게 遺憾되는 것은 交通上 關係로 대개는 都會中心이었고 幽僻한 곧까지는 및이지 못하였다. 主의 再臨이 切迫한 이때에 우리는 한 靈魂이라도 더 主앞에 引導하기 爲하야 微弱하나마 文書傳道까지 兼하게 된 바이다. 이것이 本誌가 呱呱의 소리를 내게된 動機이며 目的인 것이다. 그 중 런 故로 本誌는 一介團體나 一介敎派만을 中心하미 아니요, 一般 基督敎界를 爲하야 純福音宣傳의 使命을 등에 지고 信仰諸賢의 想篤하신 聲援과 끊임없는 達鞭을 期待하면서 이재 匍匐의 一步를 내여 디디는 바이다.”

그러나 위의 내용의 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聖化」가 적어도 1935년 처음 출발할 때 초교파적 성격을 띤 전도용 잡지로 시작했으나, 교단적인 중심 배경은 감리교가 아니라 성결교에 치우친 잡지였다. 인용한 창간사 위의 글의 ‘순복음 선전의 사명' 이란 말은 곧 성결교회가 지칭하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을 다른 말로 표현할 때 썼던 용어였고, 또한 '우리 부흥 전도대’ 라는 말은 성결교회의 장막전도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34년 성결교회 제2차 총회회의록에는 정남수 목사와 차창선 목사가 일반 개교회 소속이 아닌 장막전도대 소속 목사인 것이 기록되어 있다. 「聖化」는 창간호부터 수시로 ‘전선순회 장막전도회기(傳道巡廻 帳幕傳道會記)’가 김광원(1934년에 26세로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1932년부터 장막전도대에서 사역함)의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1929년 이후 총회조직(1933년)까지 매년 1회씩 열리는 성결교회 연회에서는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전도 사업을 총괄하는 이사를 임명하였고, 특별전도사업으로 전국부흥순회 장막전도대를 조직하고 전도대장을 임명하여 소도시와 대도시를 순회하여 천막대형집회를 갖게 하였다.

그 한 예로, 1931년 3월 2일에 가졌던 제3회 연회에서는 전국순회이사로 곽재근 목사, 전국장막전도대 대장으로 정남수 목사를 임명하여, 선만(鮮滿)일대 각지에 이르러 자동차에 악대와 천막을 실고 장막전도 집회를 가져 성결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다. 따라서 정남수 목사는 창간사에서 밝힌 것과 같이 성결교 특별전도기구인 장막전도대 일원으로 교통상 관계로 산간 오지, 낙도에 이르지 못하는 아닌 도시중심의 선교 한계를 문서전도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여 「聖化」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제1권 2호의 목차를 보면 13명의 필진 가운데 성결교 교역자가 아닌 사람은 토-리(Torrey)를 비롯한 5명이었고, 나머지 8명은 모두 성결교 교역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집필진이 점차 초교파적 성격을 띄고, 성결교 교역자들의 글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주 요인은 1936년 성결교 제3회 총회시에 서북지방회장인 변남성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자 당시 중앙세력들과 동양선교회 측에서 제3회 총회를 무효로 선언하고, 총회 대신에 이사회를 집권기관으로 만든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이같은 잘못된 내용을 거부하는 성결교회 신진개혁세력들 가운데 곽재근, 변남성, 안형주 목사와 함께 정남수 목사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남수 목사는 이들과 함께 1936년 11월 25일 성결교를 탈퇴하여 어떤 정치적 기관도 배제하고, 법규도 세우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 를 세웠다. 결국, 이러한 일의 과정은 「聖化」가 초기 성결교 교단적인 배경에서부터 벗어나 점차적으로 친감리교적인 초교파적인 성격의 잡지로 나가는 결정적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1935년 9월 발행된 「聖化」의 ‘敎界뉴스' 에는 편집 실무를 맡은 송태용 전도사가 경성 체부동성결교회를 사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초교파, 초사도적인 내용을 지향하여 순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교회(Church of God)‘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돌아와 「聖化」의 편집국장을 맡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聖化」 1936년 8,9월 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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