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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
  • 이재완 목사(본지 대표이사)
  • 승인 2022.04.06 16:15
  • 호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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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완 목사(본지 대표이사)

지금 한국교회는 사순절 절기를 지나고 있다. 사순절은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이다. 부활절을 경건히 준비하는 절기이다. 이 사순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만일,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이 없었다면 교회도, 구속의 은총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을 포함해 고난이 반갑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실패요, 불행이요, 멸망이요, 죽음이요,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의 힘든 길을 피해 안락한 꽃길만 가려고 희망한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말하기를 “고난의 길은 길기도 하지만, 어둡기도 하다”고 하였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그 고난의 길을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난의 길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마다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고난이 아니다. 그분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죄의 해결 방법으로 제사 제도를 가르쳐주셨다. 이 제사 제도는 죄의 짐을 짐승이 대신 지게 한다는 것이다. 죄를 범한 사람은 양 한 마리를 성전에 끌고 와 그 머리에 안수하면서 자기 죄를 그 양에게 전가 시켰다. 그리고 그 양을 하나님 앞에서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고기를 남김없이 불태워 하나님께 바쳤다. 그러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양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죄인을 용서해 주셨다. 이때 대신 죽는 양을 ‘대속의 양’이라고 불렀다.

레위기 16장 14절에 “죄인이 죄사 함을 받으려면 양이나 염소의 목을 쳐 죽이고 그 고기를 제물로 바치고 피는 그릇에 담아 ‘속죄 소’에 들어가 제단에 바르고 일곱 번 뿌려야 했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 의미이다. 그러나 이 대속은 불완전한 것이어서, 인간으로 보내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다. 로마서 6장 25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죄인 된 인간은 심판받아야 하는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한 것이다. 문제는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는데 있다. 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재물로 드려졌다. 이때 당한 고난을 신학적으로 ‘아가페의 고난’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마틴 루터(M. Luther)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오직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계시하셨다. 그러하기에 십자가 밖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하나님은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계시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만,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영광’이요 자비라고 고백한다.

키케로(M. T. Cicero)는 말하기를 “고난은 크면 클수록 영광이 크다”고 했다. 옛말에 “재는 넘을수록 험하고 내는 건널수록 깊고, 풍파는 겪을수록 심하다”고 했다. 그 고난의 세월을 참고 견디면 밝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날이 찾아온다.

생각하는 이들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금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말로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수모와 고난을 겪었다. 그래서 국민은 그를 사랑했고 선택한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고난 속에 저마다 지쳐 있다. 일상이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국민은 2000년부터 불어닥친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고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난에도 끝이 있고, 시련에도 끝이 있다. 이유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8)”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믿자. 고난은 영광의 씨앗임을 잊지 말자.

이재완 목사(본지 대표이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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