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2.1.22 토 21:25
상단여백
HOME 신학 역사신학
한국성결교회 성장사(61)<제5편> 한국성결교회 성장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2.01 13:50
  • 호수 534
  • 댓글 0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5년차에 교단역사를 기독교헤럴드가 새롭게 조명하여 전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결복음에 대한 고귀함을 전하고자 안수훈 목사의 저서 ‘한국 성결교회 성장사’를 연재해 드립니다.

제5장 교단합동기

제1절 교단합동 운동(2)

이명직 목사가 발표한 메시지를 취득한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경기지방회’가 제일 먼저 찬성하면서 임시지방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이 합동 호소문을 내고 적극적으로 교단합동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호소문

 

친애하는 전국 동역자와 신도 여러분께!

임마누엘 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림과 아울러 은혜와 평강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우리 교단은 65년 전 미국인 C.E 카우만과 E.A 길보른이 동양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명확한 사명감에서 멀리 태평양을 건너와 일본 동경에서부터 먼저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907년 5월 20일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라는 역사적인 간판을 걸은 후 반세기가 넘도록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순수복음을 전파하여 오던 중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현시대 사조의 악영향을 받아 세속적 자유주의의 연합기구인 N.C.C에 우리 교단도 가맹하여 그들과 동조하게 되므로 부지불식간에 자유주의와 세속주의로 흘러가게 됨을 통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수 동지들이 N.C.C 탈퇴운동을 전개하는 일명 ‘보수동지회’까지 조직하게 되었던 것인데, N.C.C의 몇 분들이 몰이해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분열의 쓰라린 고배를 마시면서 ‘보수총회’를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여기에 이해하고, 반성과 회개의 결실로서 N.C.C만 탈퇴하고, 물러났던 것이며, ‘보수총회’는 어느 때나 그들이 N.C.C. 만 탈퇴하면 활동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하여 놓았으나 또다시 ‘동양선교회’ 전통과 맞지 않는 국제연합기구인 I.C.C.C.에 가맹함으로 인하여 합동운동의 장애물로 가로놓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단운영과 유지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이며, 합동을 위하여 N.C.C. 탈퇴운동을 하는 측이 또다시 I.C.C.C에 가맹한다는 것은 모순이었으므로, 합동운동은 금일까지 지연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을 ‘동양선교회’를 모체로 하여, 신앙이 자라난 신도들로서 동양선교부 자체의 젊은 세대 층이 영감 부족으로, 혹은 그릇 갈 때 그들을 회개와 반성으로 개 준하게 할지언정 그들과 영영 서로 어긋난 길로 갔다는 것은 신앙 양심으로나 도의심으로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알아, 꾸준히 ‘동양선교회’를 중심으로 피차간 이해와 반성과 타협으로 합동운동을 모색하여 왔습니다.

그러던 중 E.A 길보른이 내한하여 이명직 목사와 의논한 결과 이명직 목사의 생존에 기어이 합동을 이루어 보리라는 신념을 그들에게 다시 한번 피력하자, 피차간 원칙적으로 의견일치를 본 결과로 먼저 양 단체가 연합하여 수양회를 열고, 은혜를 받은 후 가능한 한 합동을 모색하여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다같이 “성결교회 신자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반대할 자 없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 속에서, 본 경기지방회도 긴급 임시지방회를 열고, 이를 토의한 결과 법과 절차를 초월하여 추진할 것을 만장일치로 찬성 가결케 되어, 이 뜻을 전국의 성도들 제위께 호소합니다.

 

주후 1965년 7월 19일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경기지방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