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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46)Ⅳ. 동양선교회(OMS)의 태동과 발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1.25 15:34
  • 호수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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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복음전도관과 함께 성서학원으로 한 건물을 두 용도로 사용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주된 요인이었으나,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구원과 전도자 양성이라는 이중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동경성서학원 간판은 붙이지 않았고, 다만 좁은 입구 위에 큰 글자로

“예수교 전도관 / 매일 밤 예배 / 누구나 환영(Jesus Doctrine Mission Hall / Services Every Night / Every Welcome” 간판을 걸었다.

1901년 당시 동경의 인구는 거의 300만 명이었으며, 매우 혼잡한 도시였다. 인구밀집 도시인 동경 한복판에 세워진 성서학교에 처음으로 5명의 학생이 등록하였으나, 2~3개월 만에 10명으로 되었다. 초기의 교사진은 카우만과 나카다 외에 박스톤(Berclay Fowell Buxton) 선교사 가정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던 사사오(笹尾)가 신학교수로, 박스톤 전도대 음악 지휘자인 미다니(三谷種吉)가 음악교수로 같은 해 가을에 합세하였고, 1902년 8월 카우만의 요청에 따라 킬보른(E. A. Kilborune)이 전신기사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건너와 합세하였다. 1903년(明治 36年)에는 예일대학 출신인 다께다(武田協吉)가 가세하여 조직신학을 담당했는데, 동년 1월의 󰡔불의 혀(焰の舌)󰡕에 의하면 수양자는 남자 21명, 여자 6명으로 총 2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1904년 10월 31일에 헌당식이 행해지고, 그 전의 장소인 간다(神田)에서 가시와기(柏木)로 이전하였다. 이 때 카우만은 6월 레티 카우만의 심장질병으로 인해 미국으로 귀환하여 치료와 모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있지 않았다. 캠퍼스는 요도바시 가시와기(Kashwagi Yodobashi) 4번가에 위치하였는데, 그곳에서는 90명에서 110명까지의 남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뿐만 아니라, 강의실, 도서관 그리고 식당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후에 그들은 선교사들과 나카다 가족을 위한 사택을 지었다.

동경성서학원은 가시와끼로 이전한 뒤에 대대적으로 수양생 모집 광고를 하였는데, 일정한 입학 시기가 없이 수시로 헌신자들을 받아들였다. 대체로 수양생들은 처음 들어와 두 달간 적응기간을 통과한 후 약 2년간의 수양과정을 거쳤는데, 졸업생들에게는 졸업증서도 주지 않았다.

동경성서학원은 매일 밤 야간 전도회와 주간 성서학교의 수업으로 하루 종일 사람들의 출입이 끊어지지 않았다. 매일 저녁 집회는 오후 7시에 시작되었는데, 모인 군중들 부근에서 노방연설을 하였다. 매주 일요일에는 오전 8시에 일본어로 성서수업, 9시 30분에는 영어설교, 주일학교 일본어로 오후 1시에 그리고 2시부터 4시까지는 일본어로 성결집회가 진행되었다. 야간집회는 일본어로 마련되었다. 따라서 수양생들은 주로 오전에는 학과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시장과 거리에 나가 노방전도와 개인 전도를 하였고, 저녁에는 전도집회에 참여하였다. 동경성서학원에서 가르쳤던 주요 과목은 '여호수아기’, 신약은 디모데 전·후서', '성서신학', '웨슬레의 기독자 완전’ 그리고 매일 1시간씩 필수로 주어진 '영어', '창가(음악)이었고, 1909년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11시까지 1과목당 50분씩 3과목을 가르쳤는데 교과목은 '고린도 전·후서', '성서신학‘ (이상은 나카다 목사 담당), '창세기', '묵시록 강의', '성결’(사사오 목사 담당), '사도행전', ‘개인전도’(다니구찌 교수)가 있었고, 11시부터는 음악과 영어를 매일 가르쳤다. 이처럼 초기 시작부터 성서학원의 교육은 신학교육기관이 아닌 복음전도 훈련의 성서학원을 지향하여 과목은 주로 성경만 배웠고, 전도 실습을 강조하였다.

“성서학교는 신학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학교로 하나님의 말씀, 성서만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교과서는 성서 외에 따로 없습니다. 주해자는 성령 자신입니다. 이 학교의 학생은 매일 밤 전도관에 있어서 멸망할 영혼을 위해 개인적으로 회개를 권하며 개인적 전도법을 훈련하였습니다. 또 생도는 매년 적어도 한 두 번 복음전도대에 참가하여 일본국 곳곳에 가서 현지 전도를 배웠습니다. 학생들이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진실로 새롭게 거듭나는 사람으로 장래 간접, 직접 사역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자비입니다.”

특정 교파에 상관없이 건전한 교단이면 누구나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입학이 허용되었고, 졸업 후에도 초교파적으로 사역이 가능하였다. 이것은 19세기말에 북미에서 세워진 대부분의 성경학교들과 같이 신앙선교운동의 훈련센터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한국에서 설립된 초기 경성성서학원에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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