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12.3 금 15:23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간증] 행복한 교회 양봉용 장로의 신앙스토리(2)아 아…그리운 나의 어머니 성봉화 권사
  •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 승인 2021.11.25 14:26
  • 호수 533
  • 댓글 0
양봉용 장로

나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맞아 주셨어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고통당하신 주님이 그때도 나를 위해 맞아 주신 거예요.”이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시험은 당시 우리 집에 첫 번째 시련은 제사였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가 후손 없이 돌아가셨고, 2대 독자인 아버지는 거의 매달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제사는 우상숭배라는 사실과 부처를 신인줄 잘 못 알고 속아 경배했던 사실을 철저히 회개하였기에,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라고 알았기에 절대 용납이 안 되었다. 그러나 효자였던 아버지는 제사에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 가정에서 제삿날과 명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렇게도 명절마다 어렵게 보냈는데 어머니를 핍박하던 아버지는 훗날 어머니의 고진감래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후 천국으로 가셨다. 

그 후 명절이 되면 우리 집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제사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어머니의 기도는 끝이 나지 않았다. 보통 1 ~ 2 시간쯤인 기도시간은 가족이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잠이 들 정도로 길고도 길었다. 그러면 나의 어머니는 “그래 너희들은 피곤하면 자라, 자는 것도 은혜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여름날 그 시절에는 번개와 천둥이 왜 그렇게 심하던지 어머니는 우리 삼 형제를 치마폭에 싸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 우리를 위해 방문을 여시더니 “얘들아, 예수님께서 오시려나 보다”라고 말씀하시고 위로해주셨다.

언젠가는 아들만 셋이니 부엌의 불당번은 언제나 나였는데, 콩대를 불로 태우다 탁 튀면 앗 뜨거워하면서 호들갑을 떨면 어머니는 “예야 뜨겁지! 지옥 불은 이것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단다”라고 설명하셨다.

어떤 때에는 나와 보리밭을 매다가도 “예야 알곡인 보리는 안 자라고 잡초인 풀은 왜 이리도 잘도 자라는지, 우리네 심령도 날마다 회개하지 않으면 쑥대밭 된단다”라고 성경말씀을 알려주셨다. 

성봉화 권사

그 옛날 석발기가 없을 때, 그때는 밥할 때 곡식에 돌이 왜 그렇게 많던지 어머니가 쌀을 일다가 “돌 하나가 밥을 망치듯 우리의 죄가 인생을 망하게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렇게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우리 집에 여섯 달 동안이나 함께 하면서 전도하였고. 외할아버지도 예수님을 믿어 영접하게 하고, 천국에 가시게 했다. 이처럼 친정 식구들까지도 전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셨다.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성경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나의 어머니, 그러나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모 가정은 구원받지 못했다. 모두 다 그리도 잘사는데 이모는 인생을 참으로 힘들게 살면서 오로지 부처에 빠져 있어 정말 안타까웠다.

나는 초등학교 시설 장래 희망이 목사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교장 선생님이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 물어봐서 나는 거침없이 목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졸업할 때 우등상품으로 영어사전 대신 성경책을 주셨다. 

나는 중학생이 될 무렵 교회 목사님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 저는 목사는 안 하고, 장로가 되겠어요”라고 기도했다. 그때 나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주시잖아요”라고 고백했다. 목사에서 장로로 장래 희망이 바뀐 것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에 용돈이란 없고, 곡간에 있는 벼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두지(곳간)에는 먹을 만큼의 벼는 저장되어 있었다. 수요일 저녁 어머니는 교회에 가셨고,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방에 계신다는 생각에 예배가 끝나기 전에 나락을 가마니에 담가다가 리어커에 실어놓고 교회에 가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벼 창고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데 아뿔싸 방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시는데 말씀도 못 하시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보니 병약한 아버지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계셨다. 아버지가 쓰러질까 봐 그냥 도망치면 되는데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서 그때 나는 “아버지 저예요. 명한이 (봉용의 호칭) 그랬더니 어디서 힘이 났는지 이놈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시며 막대기를 들고 따라오셨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