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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41)Ⅲ.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10.13 15:31
  • 호수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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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총장, 교수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19세기 성결운동

뉴욕에서의 목회사역에도 불구하고 직접 심프슨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칼빈주의 목회자로서 전과 다르게 신유 체험의 강조와 약례 대신 침수례를 주장할 뿐더러,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신의 행동이 장로교회 교리와 상충된다는 점이 교회 제직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층 대중의 전도에 대한 책임감의 발동이었다. 그는 대중 복음전도의 개인적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틀에서 탈피하여 신앙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함을 깨닫고, 2년 후에 자진하여 교회를 사임하였다. 장로교를 이탈한 후 몇 주일이 지난 뒤 심프슨은 17명의 창단 멤버와 함께 모임을 조직하여 44번가 가까이 8번가 동쪽에 위치한 건물에 정착하였는데, 이것이 복음성막(Gospel Tabernacle)의 출발이었다.

1882년에 심프슨은 성서훈련원(Bible Training School)을 설립하였고, 후에 나약(Nyack)으로 옮겼는데 이 성서학교는 북미 최초의 성서학교가 되었다. 이는 평신도의 세계선교를 위한 훈련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심프슨은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의 선교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라는 신앙선교(Faith Mission)의 원칙 아래 학력이 다소 떨어지는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적 열정이 있는 평신도들을 선발하여 성경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시킨 후에 선교사로 활동하게 하였다. 1887년에는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평신도 중심의 선교단체인 기독교인 동맹(Christian Alliance)과 복음주의 선교사동맹(Evangelical Missionary Alliance)이 설립되었다. 이 두 단체는 1897년에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동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약칭 C&MA)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동맹(C&MA)의 신학적 강조점은 동양선교회의 신학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첫 번째는 ‘사중복음’의 강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말 오순절 운동에서 특징적으로 쓰여지던 용어는 ‘Full Gospel(문자적 의미와 달리 순복음으로 전해짐)’으로, 이는 ‘구원・성화(성령세례)・신유・재림’이라는 사중유형의 4가지 테마를 함축하는 표현이었다. 교회들마다 각기 신학적인 차이를 나타내면서도, ‘순복음’(Full Gospel or Whole Gospel)은 성결-오순절 운동으로부터 유래된 각 교단(교회)들에서 강조되었다. 1887년 그는 올드 오챠드에서 열린 총회의 설교에서 ‘사중복음’(The Fourfold Gospel)이라는 말씀을 전하며 처음으로 사중복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사중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축복을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요, 성케 하시는 자요 치료자시며, 재림의 왕임을 가르쳐주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동맹이 교리적 입장으로 채택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었다. 1886년 여름, 심프슨은 기존의 성결 체험을 추구하는 천막집회를 벗어나 보다 성숙한 삶과 세계 선교를 가르치는 여름 집회를 올드 오챠드 야영지에서 개최했다. 그 당시 블랙스톤(W. E. Blackstone)은 시카고의 성경 강사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재림(전천년설)을 주요 내용으로 피력하였다. 집회 마지막 날 그는 세계의 복음 확장과 예수 재림에 대한 상호적 관계를 설교하였고, 이것은 심프슨과 참가자들을 감동시켜 ‘그리스도인 동맹’(The Christian Alliance)과 ‘복음주의 선교사 동맹’(EMA)을 창립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심프슨은 세계복음화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시켜, 세계선교 사역의 완수를 주의 재림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생각했다. 따라서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을 수용한 심프슨은 임박한 종말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전 세계에 황급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선교적 열정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심프슨은 장로교나 감리교 기존 교파와 다르게 기성교인의 확보 또는 현지 토착교회의 설립 방법보다도 선교의 주목적을 오로지 직접적으로 복음전파 하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교파의 설립보다는 세계선교에 더욱 주력하게 하였고, 그의 주요 사역도 전천년적 재림을 설교하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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