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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컨퍼런스에서 놀이하는 사람들총회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경주 교육문화회관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성결교회’라는 주제로 ‘2009성령컨퍼런스’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총회 임원회와 준비위원회가 분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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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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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교단 6,000여 교역자 전원 참석해야

총회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경주 교육문화회관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성결교회’라는 주제로 ‘2009성령컨퍼런스’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총회 임원회와 준비위원회가 분주하게 전국 지방회를 순회하며 참여를 독려했고, 지방회 별로 버스를 대절하여 참여키로 해 성황을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또한 총회 임원회는 지난달 19일에 천안교회에서 회의를 갖고, 제103차 총회 때 결의한 성령컨퍼런스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재 다짐했다.

아울러 행사를 앞두고 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다. P장로(서울강남지방회)는 지난달 중순, 전주 코아호텔에서 원팔연 목사(총회장 대행)와 송윤기 목사(교단 총무)를 만나게 하여 서로간의 친분을 재확인하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수 차례의 악수와 환담이 있었다는 본지 기사가 실렸다.

이 화해설에 대해 원 목사는 “다툰 기억이 없다”며 “다투지 않았기에 ‘화해’라는 말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또한 송 총무는 김춘백 목사(총회 정책기획실장)를 통해 “두 사람은 동기라서 친분이 두터워 쉽게 화해할 수 있었다”며 “총회장 대행이 성령컨퍼런스를 추진해 나갈 때 총무가 행정적으로 밑받침 해 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총회장 대행과 총무가 손을 맞잡고 성령컨퍼런스를 잘 준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6,000여명이나 되는 교단 교역자들의 참석 여부이다. 이 기간 동안 전국 지방회가 모든 행사를 미뤄야 하고, 재정적으로 참석이 어려운 교역자들에게 후원을 해야 하며, 단체로 교통편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그래서 가다머가 말한 대로 ‘놀이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놀이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지 ‘구경하는 사람’이 논평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도 이 두 부류 때문에 목회자가 힘을 얻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한다. 출애굽 후 가데스바네아에서도 두 부류가 있었다. 이 두 부류가 성결교단에도 있다.

이 두 부류를 말한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제자이다. 하이데거는 1930년대에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의 존재론을 내놓으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히틀러 나치체제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 됐고, 신문기고 등의 글을 통해 히틀러체제를 지지했다. 전쟁이 끝나게 되자 나치 참여 혐의로 총장직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사망할 때까지, 나치에 동조했던 것을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인 가다머(Hans-Georg Gadamer, 실존철학자)는 교수직에서 해직되는 스승을 보면서 하이데거가 도대체 왜 나치에 동조했는지 무려 10여 년 동안이나 연구했다.

가다머가 1949년경부터 1960년까지 연구하여 해답을 내놓은 것이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이라는 저서이다. 가다머가 보기에 하이데거가 틀린 곳이 있었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시간성을 놓고 나의 것인지 관찰자의 것인지를 밝혔다.

이 저서에서 가다머는 ‘관찰하는 시선’과 ‘실존적인 시선’을 구분한다. 관찰하는 듯 보는 것과 실존적으로 보는 것, 그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관찰하는 시선과 실존적으로 보는 시선은 다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섞이는 순간 하이데거의 훌륭한 철학은, 언제든 나치즘에 동조할 수 있는 철학으로 바뀐다. 즉 ‘역사에서 놀이 하는 사람’과 ‘역사를 구경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관찰자와 당사자는 분명히 구분되어있는 것이다.

가다머는 이것을 ‘놀이’에 빗대어 설명한다. 실제로 ‘놀이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 두 종류는 놀이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 예컨대, 축구에서 선수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관객이 참여할 수 없다. 며칠간의 병영체험자와 실제 군복무하는 군인이 다르다. 즉 며칠 동안 병영 체험 간 사람과 군 복무한 사람의 눈물겨운 입장 차이가 크다.

놀이하는 사람과 구경꾼은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다른 이의 역사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사람이 있다.

성결교단을 사랑하는 목회자는 성령 운동과 구령의 열정으로 성장해 온 역사의 회복 운동에 들어 올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목회자는 구경만 할 것이다. 즉 제103차 총회에서 결의한  성령컨퍼런스에 참석하지 않는 교역자는 성결인이 아니라는 것이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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