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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 <51><제5편> 한국성결교회 성장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7.29 13:43
  • 호수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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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창립 제115주년 교단역사를 기독교헤럴드가 새롭게 조명하여 전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결복음에 대한 고귀함을 교훈 받고자 안수훈 목사의 저서 ‘한국성결교회성장사’를 연재해 드립니다.

제3장 환도와 교회 재건

제4절 각 기관들의 활동 사역

5. 사회사업

우리나라에서 ‘사회사업’이란 말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단어 이기도 하다. 더구나 사회사업이 전문적인 직업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 일컬어지고 있다. 물론 전에도 우리 사회에서 “자선과 빈민구제 같은 박애사업으로 불리는 소극적인 사회지원 사업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교회나 사찰에서 조금씩 구제 차원에서 하는 사업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현대 사회에서 사회사업이 전문사업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직시할 때 우리가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는 17세기 이후 ‘산업혁명’의 발단으로 인하여 자유경제 체제로 변화되면서 과거 봉건적인 영지주의에 매몰되었던 영세민들의 생활에 변동을 가져왔다.

특히 제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영악해진 시민들의 의식변화에 따라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심각한 전쟁 후유증에 따른 구체적인 구제 문제가 대두되어 사회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당시 기독교로서는 사회사업을 십계명 중에 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본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시작하게 된 사업이다.

사회사업의 기본정신은 약자를 보호하고,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여 빈곤과 무지 그리고 고난에서 구출하는 것을 기독교 사랑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이행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인애사상을 실천함으로써 고아와 과부 그리고 장애인, 배가 고파 구걸하는 자, 불량청소년, 창부, 노인 등과 같은 경제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사업이 시작된 것은 기독교의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온 뒤부터 그들이 외국자본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학교를 지어주고, 병원을 시작했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때부터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나환자촌을 건립했으며,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건축하여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적극적으로 도와줌으로써 이룩된 것이 사회사업의 최초였다.

이와 함께 한국성결교회가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한 것은 1950년 6.25사변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약 200만 명 상당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피난으로 인한 행방불명자가 20만 명, 미망인이 30만 명 상당, 고아들 만해도 10만 명이 넘게 되었다. 여기에 전쟁으로 나타난 상이용사와 떠돌이 신세의 나그네들의 보호대책이 시급하여 헤매고 있을 때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사업단체를 설립하였고, 외국 구호단체들로부터 원조를 받아 오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마침내 교단적으로 사회사업재단을 세우고 1956년 5월 22일 보건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마다 ‘성결교회 사회사업재단’에 속한 여러 개의 고아원과 영아원, 육아원, 모자원 등을 세워 본격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사업은 지역별로 물품 위주로 보급하다 보니, 현금이 필요한 부분이 나타나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구호품을 팔아서 사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회 저변의 오해를 받아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뚜렷한 사업목적이 있었기에 분명한 것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과감하게 도와준 것과 개인적인 사리사욕이 없었기에 부작용보다는 순수한 섬김으로 인식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사회사업단체로 성장해오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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