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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40)<제5편> 한국 성결교회 성장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4.01 19:04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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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제114주년 차에 이른 한국성결교회의 지나온 고귀한 역사를 기독교헤럴드가 다시 조명하여 전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상기시킴으로서 성결복음을 새롭게 교훈 삼고자 여기에 안수훈 목사의 저서 ‘한국성결교회성장사’를 연재한다.

제2장 교단의 수난기

제1절 6.25사변과 교회피해(지난호에서 계속)

6.25사변 당시 서울을 강제로 점령한 북한 공산당은 기독교에 대해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종로에 있는 기독교 관련 건물을 접수하고 공작을 시작하였다. 소위 북괴의 교육성 대표자인 이만규가 나타나 서울중앙감리교회에서 강연회를 하면서 교인들을 강제로 집합시키고 북괴를 선전하였다.

각 교회마다 “민주동맹”을 결성하게 하였고, 또 의용군을 강제로 모집하여 많은 청년들을 사선으로 내어 보냈으며, 여성들을 동원하여 밤에 무기를 운반하는 일을 강제로 시켰다. 이때 몰지각한 교인들은 북괴에 부역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본인이 경동교회 교인이라고 자청하는 김 욱이 1950년 7월 10일 경 서울 Y.M.C. 회관에 ‘기독교민주동맹’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각 교파별로 ‘기독교민주동맹’에 가입하게 하고 조직을 강화하였으며, 김일성 환영식을 위해 교인들을 동원시키고, 이 일의 핵심으로 감리교회의 김창준 목사가 활약하였다.

또한 “대구파업운동”에 괴수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던 장로교 목사 최문식이 등장하여 교회를 몹시 괴롭혔다. 그는 자수라는 명목으로 숨어있는 교역자들을 끌어내서 ‘기독교궐기대회’를 개최하고, ‘남북통일호소문’을 채택하여 북괴 정부를 찬양하는 메시지를 채택하는 등 온갖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

마침내 최문식은 교역자들과 신자들을 끌어내어 총살하고, 납북을 시도 하기도 했다. 이때 성결교회 형편은 어떠했는가? 처음 북괴가 서울에 진격해 들어와서 ‘서울신학교’를 강점하였고, 학교구내에 있는 교수들을 몰아 내 보냈다. 그리고는 ‘민주대학’이라는 간판을 걸고 북괴병사가 보초를 서고, 학교직원도 못 다니게 했다. 얼마 뒤에 ‘기독교연맹’이 후원하여 신학교를 복구한다는 면목으로 그동안 몰아냈던 교수들을 다시 학교로 불러들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에 북괴가 신학교를 접수하면서 ‘교내의 교수들을 나가라고 할 때, 지하로 숨든지 피란길에 떠나있든지, 해야 할 것인데, 그대로 서울에 남아 있다가 신학교를 복구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 들어갔다는 이유로 납북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북괴는 감언이설로 흩어진 교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신학교를 복구한다.’고 하여 그들의 말을 믿고 찾아간 교수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공산당을 그렇게도 몰랐던가하는 생각도 든다. 억울하기 한이 없다.

저들이 계획한 대로 1950년 8월 23일 서울신학교 구내에서 이 건 교장과 성결교회 총회장 박현명 목사가 붙잡혀가고, 김유연 목사와 최석모 목사도 붙잡혔으며, ‘독립문교회’ 유세근 목사도 붙잡혀 북으로 끌려갔다. 그 밖에도 서두성 목사, 임수열 전도사가 행방불명이 되고 문준경 전도사와 이판일 장로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학살 당했다.

논산 병촌성결교회의 신도들 66명, 정읍 두암교회에서 성도들 23명이 한자리에서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일이 비참하게 벌어졌다.

기독교헤럴드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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