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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54)소풍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1.04 17:25
  • 호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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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소풍이라는 제목을 써놓고 보니 저절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소풍 끝나는 날이 내게도 다가올 텐데 과연 네 삶은 지금 소풍인가, 소풍답기라도 하는 건가)

소풍은 그 어감만으로도 어여쁘다. 작지만 풍성하고 소박해서 사랑스럽다. 더군다나 소풍은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니 즐겁고 설렐 수밖에. 소풍은 단어대로라면 바람과 함께 소요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소풍은 바람 속, 바람의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 사실 설렘은 이미 마음속 바람(風)이다.

우리 집에서 연천 가는 길은 대강 90Km정도다. 강화도는 그 반쯤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엇비슷하다. 그러니 연천은 드라이브에 정말 좋은 길이다. 자유로에 들어서서 당동IC까지 백 리 정도를 거침없이 달린다. 문산을 거쳐 파주를 지나 연천까지 막힘이 없다. 길이 뻥 뚫려 있으니 마음도 저절로 뻥 뚫려 그 사이로 거침없이 바람이 들어찬다. 그러니 소풍이다.

야트막한 먼데 산은 이미 달라져 있고 가로수 잎들은 벌써 지고 있다. 은행나무는 바랜 노란빛이 되어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붉던 벚나무들은 가지만 벌써 드러내고 있다. 단풍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다. 잎새 속에 내재되어 있던 색들이 햇살의 양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너희들 수고 많았어. 이제 좀 쉬렴, 햇살 적은 시간 속의 일은 내가 할게, 초록을 쉬게 하고 주황이나 붉음 노랑이 나서는 것이다.

연천에 살아서 연천 화가라고 내가 부르는 그녀의 집 앞 덱에는 굵은 갈참나무 잎이 떨어져 구르고 있다. 팥배나무 노란 잎이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 아침이면 안개가 몰려와 집 주변을 가득 에워싸는 곳, 가을 소풍과 딱 어울리는 가을의 집이다. 그녀의 작품들과 함께 지인들의 조각이나 작품들이 마치 갤러리처럼 여기저기 놓여있다. 그 자리들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연천화가 윤금숙 댁에서는 특별히 섬세한 눈을 가동해야 한다. 사람들이 만든 작품뿐 아니라 자연에서 가져온 식물들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유리병에 턱 꽂아 놓은 단풍잎 서넛 달린 마른 가지들의 기다란 선과 산국의 향기, 꽃사과가 걸린 유리창( 나도 그녀의 흉내를 내고 싶어서 꽃사과 가지와 산국을 꺾어왔다) 그뿐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꽃들이 수놓아진 수저 냅킨은 언제나 풀이 빳빳하게 먹여 있다. 도자기로 구워진 여러 개의 작은 찻상들과 그 찻상들이 놓인 곳들도 예사롭지 않다. 그보다 작품 못지않은 그녀의 음식들은 혀를 지나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손수 만든 고구마 묵의 우아한 맛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강하지도 크지도 않는 그 부드러운 식감의 은은한 맛, 오래된 식초로만 버무러진 샐러드, 마치 조각품처럼 머그잔에 담겨진 그녀 텃밭 출신의 싱싱한 고추와 상큼한 겉절이, 손수 키운 곤드레나물로 지은 곤드레밥은 입에서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했다.

그녀의 디자인으로 지어진 집은 천장 바로 아래에 가로로 길게 창이 나 있다. 그 창으로 푸른 하늘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산사나무가 액자 속 그림이 되어 있는데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그 창문이 열렸다. 산사나무 잎들이 부딪히는 노란 가을바람 소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가을의 소리였다. 가자고 분연히 떨치고 나선 우리의 발목을 다시 잡던 가을 뜨락, 하얀 취꽃의 뒷 자태가 무성했고 작약의 단풍 빛, 주렁주렁 매달린 모과, 가을은 마치 노병이 마지막 힘을 내서 전쟁을 치르듯 나타나서 산화하는 시간이다. 잘 늙어가면 너도 아름다울 수 있어. 단풍의 속삭임에 기대게 되는 환한 시간.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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