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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49)황제폐하! 삼가 받들어 문후 드리옵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9.09 16:03
  • 호수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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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하늘은 높아지고 아침저녁 바람이 서늘합니다. 음력 팔월을 청추淸秋 라고 했습니다. 맑고 소쇄한 날을 이르기도 하나 가을만이라도 그리 살라는 무언의 교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제 폐하께 가을 안부를 여쭙습니다. 검은 머리와 황금빛 털, 흑과 백의 조화로움 뿐 아니라 1m가 넘는 큰 키의 우아하신 황제 폐하! 폐하의 배경인 옥빛 빙산ㅡ 얼음을 희게 하는 공기 방울이 오랜 세월의 압력에 의해 사라져버린ㅡ은 폐하의 위용을 더해주는 듯 합니다. 가을이 되어 얼기 시작한 바다 얼음이 하루에 4킬로미터씩 전진을 해서 구월이 되면 대륙의 크기가 실제 두 배 이상으로 커진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얼음의 나라에 두 발로 꼿꼿이 서서 황금빛 털을 드리운 채 존재하시는 황제 폐하! 겨울이 도래하여 사위가 얼기 시작하면 모두 따뜻한 북쪽으로 향하지만, 폐하께서는 오히려 추위가 더 깊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고통스럽지만 천적이 없는 그 땅이 역사를 이어가기에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여왕 폐하가 알을 낳으면 폐하의 발 바로 위에 있는 육아낭에 담습니다. 아, 폐하의 육아낭 온도는 외부 온도와 무려 80도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니, 차가운 폐하의 나라에 놀라야 할까요. 아니면 그곳에서 묵묵히 견뎌내는 폐하의 사랑에 놀라야 할까요. 빙하의 나라에 시속 180키로의 블리쟈드가 불어오면 온통 바람의 세상입니다. 이 때 폐하들께서는 서로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거대한 덩어리를 만드십니다. 집단으로 서로의 체온에 서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추위에 노출이 심한 바깥쪽과 안쪽에서 아주 조금씩 자리를 바꿔 체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한다지요.

함께 한 덩어리가 되는 집합체를 만들어 그 무섭고 혹독한 시간을 보냅니다. 돌아가면서 밖을 지키다가 다시 추우면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공평하고 공정한 공동체 말입니다. “좋은 시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건을 존재하는 대로 기린다. 모든 것이 이익이 되고 설명되어야 만 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작은 대로 위로의 세계다.” 김우창 선생의 글을 읽을 때 시가 저절로 사람으로 읽히고 얼마나 사람이, 사람의 존재대로 기림 받지 못하나 싶어서 슬퍼졌습니다. 폐하의 나라, 그리고 폐하의 국민은 모두가 폐하이며 모두가 국민인데요. 소생의 스승님께서도 모든 사람의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지요. 너희들 모두가 귀하니 서로 아껴가며 공존하라는 지혜로운 방법론인데 삼가 생각해 봐도 그 말씀이 벌써 사라져 버린 유물이 되지 않았나, 두렵고 슬픈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시는 여왕 폐하들은 새끼들이 깨어나는 시간에 맞춰 귀환하십니다. 폐하께서는 부화하는 새끼에게 식도에 보관하고 있던 마지막 음식을 먹입니다. 무려 115일이나 굶은 폐하께서는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드신다고요. 황제펭귄이란 폐하의 실명답게 조류 중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신 황제십니다. 어디 생김새만 황제다운가요. 폐하의 그 놀라울 만한 인내심은 리더의 최상급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넘볼 수 없는 고상한 공동체적 존재 방법은 소생이 속한 인류의 귀감이 되고도 남습지요. 아마 인류가 그 차가운 땅에서 지내게 된다면 남보다 더 먼저 따뜻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혹은 아늑한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날마다. 매시간 싸우지 않을까, 아 그 싸움 덕에 열이 나서 무서운 추위를 견뎌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즈음 이 땅에서는 갑분조(갑자기 분위기 조선시대)가 유행하야 상소, 영남만인소 등이 비일비재 청와대에 등장해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소생같은 사람이야, 감히, 어찌, 덕분에 예전에 써놓고 부치지 못했던 폐하에 대한 상소 아닌 연서가 생각났습니다.

먼지도 털고 몇 자 고쳐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으로 가야겠습니다.

황제 폐하도 강녕하시고 거하시는 나라도 태평성대를 이루소서. 남극이 편안해야 지구도 안전하오니 옥빛 빙산의 안녕도 함께 묻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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